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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조용래] 단바 망간기념관


일본에서 나는 대부분의 철광석엔 한반도산과 달리 망간(Mn)이 거의 들어있지 않다. 망간이 함유된 철은 강도가 높고 쉽게 녹슬지 않는다. 때문에 일본에서 강철을 만들자면 철광석과 별도로 망간광산을 따로 확보해야 한다. 일본산 망간에 전쟁, 침략의 냄새가 스며있게 된 배경이다.

망간이 3∼8% 정도 함유돼 있으면 강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신(砲身)이나 전차의 캐터필러 등에는 망간이 무려 25∼35%나 들어있다.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패전에 이르는 15년 동안 본격적으로 전쟁에 몰입하면서 그와 비례해 전국 각지에 망간광산이 속속 개발됐다.

일본 교토부(府) 북부에 위치한 게이후쿠초를 중심으로 당시 300여개의 망간광산이 개발, 운영됐었다. 이 지역은 일본을 대표하는 단바(丹波) 망간광산지대로 전전 일본제국 육군의 '망간집광소(集鑛所)'가 자리하고 있었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다.

일제의 광산운용엔 흔히 강제동원된 피식민지 백성들이 등장하는데 단바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조사론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3000여명이나 됐다. 이후 단바광산은 값싼 수입 망간에 밀려 1977년 사실상 폐광된다. 그와 동시에 강제동원의 역사, 그들이 아픔은 갱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단바에 강제동원됐던 한 사람의 조선인, 이정호씨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1986년 조선인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재현해 후대에 알리자는 취지를 게이후쿠초 지자체에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아들 이용식과 함께 자비를 털어 1989년 '단바 망간기념관'을 망간광산에 세웠다.

단바 망간기념관은 일본에 있는 유일한 조선인 강제동원 기념관이다. 그런데 지난 31일 20년을 이어온 기념관은 재정난 때문에 폐관하고 말았다. 재일한국·조선인, 이른바 재일 코리아의 협력을 상징했고 재일교포와 뜻있는 일본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어렵게 가꾸어온 기념관의 지난 세월이 무심하다.

매년 500만엔(약 6500만원)이 없어 바른 뜻이 접힐 수밖에 없다니. 이건 아니다. 기념관 측은 재개관을 위해 모금을 벌인다고 한다. 도움의 손길, 연대의 의지가 이어져 일본사회에 진실을 전하려는 단바 망간기념관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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