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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남주] 기로에 선 중국 민주운동

[시론―이남주] 기로에 선 중국 민주운동 기사의 사진

1989년 6월4일 새벽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서 인민해방군이 부패청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이 사망했다.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중국공산당에게 큰 부담으로 남아 있다. 중국공산당도 이제는 천안문 시위에 대해 '동란' 혹은 '폭란'이라는 정치적 표현보다 '6·4풍파'라는 중립적 용어를 사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체제인사나 유가족이 지속적으로 천안문 사건의 명예회복과 복권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내린 결정을 현 지도부가 전면적으로 부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안문사태 20주년을 맞는 올해도 일종의 연례행사들이 반복되고 있다.

변화에 대한 기대 점차 하락

해외 반체제인사들은 토론회와 시위를 조직하고, 중국내 반체제인사들은 돌발 사태를 우려한 정부당국에 의해 연금조치를 당하고 있다. 20년 동안 바뀐 것이 있다면, 연례행사가 된 운동이 중국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 운동가, 완룬난은 이런 상황을 흥미롭게 해석한 바 있다. 그는 천안문사태 당시 '쓰퉁(四通)'이라는 중국의 대표적 민영 IT기업 총수였고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인사다. 그는 1960년대 지금 중국 최고 실권자인 후진타오와 칭화대에서 동문수학했고, 문화대혁명 때 단둘이 베이징을 떠나 청두 충칭 난징 등지를 다니며 선전활동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천안문사태 당시 그는 학생시위대와 당내 개혁파 사이의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 실패해 해외로 도피하는 신세가 되었다.

망명 이후 다른 민주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의 운은 다했다"며 중국 민주화를 낙관적으로 전망했으나 2006년 "공산당의 운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는 글을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그 근거로 몇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해체를 교훈으로 삼아 중국공산당은 반대파에 대한 억압을 확실히 할 것을 결심했으며, 합종연횡을 통해 안정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했고, 경제의 지속적 성장으로 공산당 집권능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그에 더해 전통적인 공산주의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공산당이 이미 경제·사회 엘리트를 포괄하는 새로운 중산계급의 정당이 되었으며, 안정적인 권력교체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사태 이후 통치를 위해 스스로 강해야 할 부분은 강해지고, 유연해질 부분은 유연해지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농촌과 공장 밀집지역에서는 1년에 수만 건에 이르는 분규가 발생하고 있고, 격렬한 충돌사태도 종종 일어난다. 완룬난도 지난달 '독일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부패문제, 정치적 투명성, 사회불평등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민 지지 없으면 성과 어려워

그러나 이러한 사회 불안이 정치 불안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능동적 변화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최근 해외의 일부 반체제인사들도 기존 활동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려는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해외 망명가들의 활동은 주로 서방 언론에 의존해 왔다. 이들이 만약 활동의 중심을 중국 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이들과 밀착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중국 내외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국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압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는 전조가 될 소지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 민주주의의 갈 길은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이남주(성공회대 교수·중어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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