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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문일] 7번타자 이승엽


국민타자 이승엽이 7번타자로 밀렸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개막전 5번타자로 시작해 곧 6번으로 내려갔다가 5월 5번으로 복귀했지만 그제까지 6경기 연속 무안타 부진 속에서 며칠 전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7번까지 떨어졌다. 이승엽은 부상 때문에 주춤했던 2007년 라쿠텐 이글스 노무라 감독으로부터 "저런 게 무슨 4번타자냐. 7번타자라면 무섭겠지만"이라고 야유받은 뒤 잠깐 7번으로 내려간 적 있다. 2005년 롯데 마린스에서는 주로 7번에서 30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 시즌의 강격(降格)은 조짐이 수상하다.

상대 투수들은 일본 야구 6년째인 이승엽을 철저하게 분석해 공략법을 만들었다. 약점인 몸쪽 높은 공을 두 개쯤 던져 자세를 위축시킨 뒤 바깥쪽 낮은 공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승엽은 그 중 실투로 한가운데 몰린 공을 홈런으로 만들었다. 요즘 상대하는 퍼시픽 리그 투수들은 걸러보낼지언정 실투는 거의 안 한다는 게 이승엽의 불행이다.

그러나 차려주는 밥상만 받을 수는 없다. 부진의 원인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있는 것 같다. 공이 안 맞을 때 이승엽은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한다. 다른 타자들은 두 가지로 대응한다. 평소보다 스윙 연습을 더 해 약점을 다듬거나, 상대 투수에 관한 자료를 분석해 공략법을 세우는 것이다.

다른 중심타자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득점권 타율도 위기를 부채질한다. 한·일전에선 꼭 한방 해주던 이승엽이 일본에선 해결사 역할을 못 하는 것이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보다 정신적 요인에 크게 영향 받는다. 그래서 멘털 스포츠(mental sports)라고 한다. 승부의 고비에서 집중력이 강해지는 선수가 있고 부담감 때문에 위축되는 선수가 있다. WBC 결승전을 날리고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맹활약 중인 임창용과 비교하면 이승엽의 신경은 섬약한 것 같다.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박찬호도 선발투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불펜으로 내려갔다.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은 챔피언스컵 결승에서 부진하더니 급기야 방출설이 나오고 있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발군의 활약으로 국민의 청량제 역할을 해온 이-박-박 트리오가 절치부심(切齒腐心),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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