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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전에 타인유심 여촌탁지(他人有心 予忖度之)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가 헤아린다는 뜻이다.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는 요즘 세상에서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말이나 행동이 생각과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남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거꾸로 남이 내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것인지 헤아리는 능력도 생긴다. 노회한 사람은 이를 이용해 부를 쌓고, 현명한 사람은 덕을 쌓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유서에 '돈 문제만큼은 떳떳했다고 자부한다' '내 평가는 역사가 해 줄 것이다'라는 말을 추가하고 싶었겠지만,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 말 대신 '신세를 졌다, 원망하지 마라'를 넣음으로써 수많은 노빠를 샀다.

노 전 대통령의 뜻하지 않은 처신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임채진 검찰총장이 최근 퇴임의 변을 밝혔다. '사과'도 아닌 '사죄'라는 용어를 썼다. 또 '인간적인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정부 기관의 장으로서 고개를 많이 숙였다는 느낌이 들지만, 소수보다 다수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고뇌에 찬 판단의 결과인 것 같다.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지난 4일 한나라당이 의원 연찬회를 가졌다. 세종연구소장의 강연이 논란이 됐다. 진정한 보수는 이래야 한다는 듯 최근의 추모 열기를 비판했는데, 낯이 뜨거울 만한 내용이었나보다. 강의 도중 한나라당 의원들이 좌불안석이었고 일부는 자리를 떴다. 의원들이 그걸 보고 혀를 찰 국민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은 날 민주당도 의원 워크숍을 가졌다. 사진을 보니 회의장에 '노무현 대통령님,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침 뱉고 돌아선 사람들이 철새가 되어 '지못미'를 외친다는 눈총을 받지는 않을까. 국민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렸다면 현수막 글 하나라도 신중히 썼을 법하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정도는 어땠을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성공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남이 나의 마음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헤아려 처신하는 법도 배워둘 만하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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