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의구] 난국일수록 소통해야 기사의 사진

대통령이 외국 정상이나 외교사절들을 만나는 자리에 배석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탁월한 외교가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해 집중력 있게 대화를 끌어간다. 상대방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주제를 깊숙한 부분까지 챙겨 화제에 올림으로써 단시간에 상호 이해와 친밀도를 높이며, 감동까지 이끌어내는 소통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지난 2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도 이런 특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클린턴 장관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귀국 후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이달 초 제주도에서 있었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꼬치를 직접 구워 접시에 올려주는 성의를 보임으로써 아세안 정상들에게 우의를 각인시켰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측근은 이런 이 대통령의 능력에 대해 '오랜 경영자(CEO) 경험에서 다져진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소통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촌 출신에 고학생 시절을 거쳐 대기업 경영자가 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서민인데도 국민들이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 현안에 관해서는 청와대가 국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 있었던 7대 종단 대표들과의 오찬에서도 비슷한 고언이 나왔다.

최근 최대 국정 현안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청와대의 기본 모드는 침묵이었다. 국민들은 공전절후의 사태를 맞아 몹시 혼란스러웠다. 누구로부터든, 어떤 방향이든 설명을 듣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원칙적이고 단편적인 대통령 발언들만 간접화법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민심을 다독일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됐다는 후문이다. 국민장 사흘 후 있었던 정례 라디오 연설 역시 원론만 되풀이하는 기조에서 사실상 한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국민들이 국정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민감하고 풀기 어려운 현안일수록 그런 욕구는 더 크게 마련이다. 중차대한 사안이 발생했는데도 청와대가 이런저런 이유로 입을 닫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국정 최고지도자가 현안의 뒷자리로 물러나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이 불안해진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추종자와 동시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이 아니라 극단적인 편가름을 구사하고, 분열을 양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여론의 갈림을 우려해 침묵이 능사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국민들의 심중을 꼼꼼히 살핀 다음 참신하면서도 정연한 논리를 갖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지난해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해외정보 파트는 부시 가족의 세세한 취향, 심지어 개 이름까지 챙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청와대가 국민 스스로도 모르고 지내던 가려움증까지 찾아내겠다는 각오로 소통에 임하면 어떨까. 난국일수록 대통령의 진심이 담긴 대화는 국민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통 의지는 믿음을 구축할 것이다. 진솔한 대국민 대화는 대통령에게 부담이라기보다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의구 정치부장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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