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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칼럼] 추모와 굿판 기사의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하면서 정치적으로 특별히 겨냥했던 무엇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서거 후 공식 발표된 유서 내용은 그가 법리와 도덕적 순결 사이에서 수없이 번뇌하다 참담한 절망의 끝에서 비극적 최후를 결행한 것으로 읽힌다.

그 지경까지 간 데 대해서는 주장들이 여전히 많다. 그 중에서, 결과적으로 검찰과 언론이 합작해 그를 벼랑 위로 내몰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대체로 수긍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과 주변 인물의 비리혐의와 관련해 소극적 보도자세를 보이던 이른바 진보·친노매체들마저 어느 순간 매도(罵倒) 경쟁에 뛰어든 것에서 깡그리 의욕을 상실했을지 모른다.

죽음을 불사하기까지의 고독은 백번 이해되고 남는다. 오기 자존심이 유별났던 터라 그의 앞날에 대해 불길한 예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설마했던 최악의 상황을 현실로 망연하게 맞닥뜨린 것이다. 반전(反轉)을 거듭했던 생애에 비춰보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죽음의 방식까지 가장 그답게 선택했다.

유서내용으로 봐 의도하지 않았을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극적인 대반전에 성공했다. 연인원 500만명이 참여한 전국 규모의 추모를 봐도 그렇다. 알려진 대로 그들 모두가 친노는 아니었다. 유례없는 추모열기는 전직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가 없어 그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추모분위기에 편승해 재미 좀 보겠다는 정치객꾼들은 패륜아와 다를 바 없다”

세상을 떠난 이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한 국민 심성, 죽은 자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관습도 추모의 큰 물결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위기 여파로 팍팍한 일상에 찌든 국민들의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 불만도 적잖이 겹쳐졌을 것이다.

소박한 부탁 몇 가지를 덧붙여 선 굵게,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인생을 함축해놓은 듯한 유서는 감성의 심연까지 흔들었다. 실패했지만 그가 추구했던 '모든 사람이 고루 잘 사는 사회'는 당위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애통해하며 그를 배웅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이 전부는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지극히 사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 죽음의 방식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할 일이 아니다. 필부(匹夫,匹婦)도 그렇거늘 공인 중의 공인이던 그에게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오죽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그 엽기적 무책임성을 비판해도 뭐랄 건 못된다.

추모모드는 그대로다. 성숙하지 않은 세대를 향해 순국(殉國)을 말하는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다. 비리혐의로 수사받던 사람이 자살 후 성자가 되는 나라가 있느냐는 글은 '변태' 취급을 받았지만 사실 틀리지 않다. 그 글의 필자가 지칭한 '방송 무당'은 선정적 노무현 영웅 만들기에 분별없이 골몰했다. 신문들도 한가지였다.

압권은 이 와중에 재미 좀 보겠다고 추모에 편승한 정치 객꾼들이다. 노무현 정권 임기 후반에 대통령을 사정없이 짓밟은 민주당 안팎의 수많은 정치인 얼굴은 쇠가죽보다 두꺼워 보인다. 상주를 자처하며 낡은 정치투쟁에 나선 그들은 늙은 아비를 오래 방치해둔 채 내왕을 끊었던 패륜아 같다. 지금 와서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는 것은 아비가 죽자 유산에 눈이 뻘개져 대성통곡을 독점한 패역과 다르지 않다.

광란의 허깨비 촛불시위가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친북진보·좌파가 지극히 인간적인 죽음을 인질 잡고 이념·정치투쟁을 획책하는 것에 관대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북한의 위험한 불장난까지,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정말이지 산 사람은 이제 산 사람 일에 매달려야 한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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