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광장,그리고 민주주의 기사의 사진

그제 저녁 6시30분께 서울 신문로 에서 버스를 내려 정동길을 따라 걸었다. 정동제일교회에선 청년들의 복음성가가 은은히 울려나왔고, 저만치 서울시립미술관에선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전'을 알리는 배너가 흔들거렸다. 6월의 신록으로부터 뿜어나오는 테르펜 등 방향물질을 심호흡하며 행복을 느낀 것도 잠시, 덕수궁 골목길을 빠져나와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고성들.

대한문 앞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여전히 건재했고, 태평로 돌담길을 따라 용산참사 유족들의 천막을 비롯해 수다한 시민단체와 대학동아리의 천막이 이어졌다. 도로 건너 서울광장엔 이미 시민들이 빼꼭히 자리해 있었고….

수십개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7시30분 시작된 '6·10민주항쟁계승 민주회복 범국민대회'는 이명박 정부 규탄 일색이었다. 독자적으로 격앙된 목소리를 내는 '시민'도 더러 있었다. 의아한 것은 대회장 로열석에 야당 지도부가 좌정해 있는 모습이었다. 야당 의원도 국민임에 틀림없지만, 국회에 있어야 할 분들이 왜 서울광장에 나와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면식이 있는 몇몇과는 눈길을 주고 받기도 했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편치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자유 소통 공간인 서울광장이 야만화되지 않도록 폭력과 불법을 몰아내자”

대회장 한켠에서 들었던 악덕 기업주를 고발하는 노동조합원들의 절규와 재개발로 쫓겨나야 할 세입자들의 낮은 목소리엔 수긍이 갔다. 오죽 호소할 곳이 없으면 광장으로 나왔을까.

하지만 'MB OUT' '이명박의 罪' 등 과격한 리플렛엔 선뜻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 자신 국민의 한 사람으로 현 정부의 시책이나 태도에 불만이 적지 않다. 그래서 부단히 목소리를 내고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처럼 과격한 구호에까지 동의하고 싶진 않았다. 더 실망스런 것은 집회가 끝나고였다. 밤 10시15분 대회가 끝난 후, 범국민대회 참가자 중 수천명이 광화문 쪽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해산을 종용하던 경찰은 결국 한 시간 뒤 강제해산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한 것은 불문가지였다.

광장은 성격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특정 목표의 관철에 이용된 야만의 공간. 평양의 김일성 광장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전례가 있다.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신한 여의도 광장. 한때 관제 궐기대회와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던 야만의 공간이었다.

낭만의 공간도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기자로 분한 그레고리 펙과 한 나라의 공주로 분한 오드리 헵번이 풋풋한 사랑을 나눈 로마의 스페인 광장을 비롯,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뉴욕의 워싱턴 광장 등이 그렇다.

변혁의 획을 그은 역사적 공간도 있다. 피부색 차별 없는 세상을 염원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릴 듯한 링컨 기념관-리플렉스 호수-워싱턴 기념관. 옛소련 붕괴의 도화선이었던 모스크바의 크라스나야 광장이나 6·4 사태 현장이었던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역시 야만의 공간인 동시에 역사적 공간이다.

우리에게 서울광장은 어떤 의미인가. 군화에 짓밟힌 야만의 공간이었는가 하면, 민주화를 일궈낸 변혁의 본거지였으며, 월드컵 축구 4강신화를 일궈낸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런 서울광장이 정치집회장으로 변질돼가고 있다. 광장의 야만화를 부를 소지마저 다분하다.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보장되면서도 불법과 폭력이 소멸된 공간. 시민이나 공권력이나 유념해봄직한 대목 아닐까.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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