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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목소리를 낮춰요


6월은 동족의 가슴에 서로 칼을 겨눈 비극적 전쟁이 일어난 달이다.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싸움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곳곳에 증오와 갈등의 포연이 자욱하다. 남북한의 화해와 경제협력의 산물인 개성공단은 북한의 황당한 요구로 위기를 맞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보·혁의 갈등도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노동계의 하투(夏鬪)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나라가 온통 '분노'와 '갈등'의 연기로 자욱하다. 차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흥분한다.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관중은 없고, 달변의 연사들만 존재할 뿐이다. 정치적 입장이나 관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유행으로 굳어졌다. 사람이 흥분하면 지혜가 달아나 버린다. 흥분하면 논쟁하고 협력할 기회를 놓치는 법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침묵과 경성(警省)이 필요하다. 화를 자주 내는 사회, 고성이 난무하는 사회는 건강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목수가 목공소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그때 목수의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목공소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통나무가 성큼성큼 잘려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소년들은 목공소의 들뜬 분위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한 소년이 탁자 위에 놓인 시계를 만지다가 그만 톱밥 속에 그것을 빠뜨리고 말았다. 시계를 찾기 위해 톱밥을 뒤졌다. 그러나 바닥만 점점 난장판으로 변할 뿐이었다. 소년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네 탓이다'라고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목공소는 전기톱 소리와 고함이 뒤섞인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이제는 시계를 찾는 것보다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목수가 소년들을 불러모았다.

"급할수록 마음을 가라앉혀라. 일단 무릎을 꿇어보렴. 그리고 귀를 마룻바닥에 대보아라.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소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목공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째깍째깍…."

침묵을 뜷고 들려오는 선명한 소리….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는 전혀 들리지 않던 시계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목수가 시계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면 해결책이 보인다. 어려운 때일수록 흥분하지 마라. 모두 떠들어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상황이 바로 시계를 잃고 서로 고함치는 목공소 풍경과 흡사하다. 광야의 소리, 진리의 소리를 발해야 할 교회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쪽이 '예'하면, 다른 한쪽은 어김없이 '아니오'를 외쳐댄다.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낸 적이 거의 없다. 사학법과 사형 제도는 물론 남북관계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도 번번이 충돌한다. 성경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신데 목소리는 항상 다르다.

요즘 기독교계의 시국선언이 가히 홍수를 이루고 있다. 모든 단체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무분별한 성명 남발을 멈추라는 시국선언도 등장했다. 뭔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조급증이 문제다. 남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것도 삶의 한 지혜다.

묵상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든다. 역경을 만날 때 하나님 앞에 조용히 엎드리면 세미한 해결의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은 겸손하게 엎드린 사람에게 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노크소리는 주변이 잠잠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지금은 경청(傾聽)의 지혜가 필요하다. 톱밥 속에 숨은 시계를 찾으려면 논쟁을 그치고 마룻바닥에 겸손히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귀 기울여 그분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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