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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위시룸'이라는 회사는 남자용 브래지어를 판다. 수요자 중에는 중년 월급쟁이도 있다. 쓰치야 마사유키 위시룸 사장이 최근 저팬 타임스에 밝힌 사실은 뜻밖이다. "중년 월급쟁이들은 전후 일본을 이끌었던 남성다움을 자랑하던 바로 그 세대다."

일본 20∼30대 남자들 가운데 '초식 남자'(소쇼쿠 단시, 草食 男子)가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 중년 남성까지? 그들은 왜 브래지어를 찾는가. 금욕적이고 인내심 강했던 전통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짓이란다. 그들은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차분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데다 생기가 솟는 느낌도 든다고 말한다.

위시룸이 남성들에게 판매한 브래지어는 5000개를 좀 넘는 정도. 극소수 남성들이 찾을 뿐 일반화된 현상은 아닌 셈이다. 사냥하던 유전인자가 녹아 있는 남자들이 브래지어라니? '육식 남자' 입장에서는 구역질 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유독 일본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며칠 전 이에 대해 일본에는 오래 전부터 남녀 양성을 넘나드는 문화적 요소가 있었다고 썼다. 가부키의 경우 초창기에 여자 배우가 남자 역할을 했다가 지금은 남자(오야마, 女形)가 여자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대중여성가극단 '다카라즈카' 단원이 미혼 여성으로만 구성돼 여배우(오토코야쿠, 男役)가 남성 역을 맡는 것도 그 예다. 젊은 여배우들과 남장한 '꽃미남'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에로틱한 분위기는 다름 아닌 양성애에 대한 찬미인 것이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어떤 갈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남자다워야 할 필요로부터 해방됐다." 철학자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초식남 현상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일본을 바꾸는 여성 같은 초식 남자'라는 책을 쓴 홍보회사 인피니티의 우시쿠보 메구미 사장은 아주 긍정적이다.

"초식남은 일상 생활에서 여자에게 더욱 '나이스'할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뭐가 나쁘냐는 얘기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지는 한 가지. 초식남은 여자를 봐도 무덤덤하다는데…. 일본에서 지난 10년 동안 콘돔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는 걸 건강하다고 봐야 할지?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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