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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노동일] 순댓국과 ‘언소주’

[시론―노동일] 순댓국과 ‘언소주’ 기사의 사진

나는 순댓국을 좋아한다. 이곳저곳 순댓국 잘하는 집을 알고 있고, 단골집도 꽤 있다. 얼마 전 아내와 외출할 일이 있었다. 아내는 먼저 저녁을 먹었기에 마침 눈에 띈 순댓국 집으로 주저없이 들어갔다. 결과는 단골집 후보에서 탈락. 국물에 깊은 맛도 없거니와 내장 고기 등이 너무 질겼다. 하지만 두어 숟갈 맛을 본 아내는 달랐다. 고기가 질긴 게 아니라 졸깃하다는 게 아내의 의견이었다. "먹을 만한데, 뭘."



요즘 논란이 이는 언론사 광고 불매운동을 보며 순댓국집 생각이 떠올랐다. 찬성과 반대 측 사이에 증오 가득한 언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순댓국 얘기로 끼어들기는 뭣하지만 양측이 주고받는 논쟁들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마치 다른 법률 교과서, 다른 판결문을 읽은 사람들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얘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순댓국집 얘기로 쉽게 설명해 보려고 한다.

불매 운동은 개인의 자유지만

나는 당연히 그 집에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아내를 포함해 나의 선택에 시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이 혹시 그 집에 대해 물어보면? 물론 가지 말라고 권하겠다. 혹은 주위에 그 집에 대한 나쁜 평을 퍼뜨릴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듯 인터넷에 맛집 후기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실망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집 문 앞을 가로막고 "이 집 맛없어요"를 외친다면 어떨까. 한발 더 나아가 "내 단골인 옆집이 맛있어요. 옆집으로 가세요"라고 하면? 그 집에 고기를 대주는 정육점을 알았다 치자. 손님을 실망시키는 나쁜 업소와 거래할 경우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 망하게 하겠다면 또 어떨까. 정당한 소비자 운동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인가.

결국 어려운 얘기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이른바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가 벌이고 있는 특정 신문 광고 불매운동은 이런 얘기다. 신문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성에 안 찬다면 조직적인 불매운동을 벌여도 된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의견 발표도 좋고 집회나 시위도 문제 없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헌법 규정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3자와 관련된 불매운동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권, 기업 활동의 자유 등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순댓국집 문을 가로막거나, 내 단골집으로 가도록 유도하거나, 거래를 끊도록 강요하는 것은 이른바 법익의 충돌 문제를 발생시킨다. 나의 자유라고 해서 한밤중의 고성방가가 허용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3자 불매운동은 미국에서도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인정되는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라고 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제3자 불매운동이 모두 위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도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 일정한 한계가 있다.

왜 제3자인 기업을 공격하나

더구나 미국 헌법과 달리 우리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 조건이 있다. 우리 헌법 제21조 4항에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이것이 또한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운동'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나 광고불매운동의 수단의 불법성을 인정한 최근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의 취지라 할 수 있다.

물론 굳이 형법상 범죄로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더라도 그 대척점에 있는 타인의 권리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의 본질적 요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일(경희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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