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폴리페서 vs 밀리페서 기사의 사진

최근 정치교수, 이른바 폴리페서(politics+professor) 문제가 새삼 눈길을 끌었다. 교수 자리를 정계나 관가 진출의 받침돌로 삼으면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이들에 대한 규제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서울대가 15일 '대책'을 내놨으나 오히려 폴리페서를 양성화하거나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결국 하루 만에 서울대는 대책을 물렸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될 게 뻔하다. 교육공무원법 개정, 교수사회의 도덕적 각성 등 법적·윤리적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폴리페서 문제로 티격태격할 때 미국으로부터는 '밀리페서' 소식이 전해졌다. 밀리페서는 폴리페서에 빗대 내가 만들어본 말이다. military+professor, 군인으로 나선 교수다.

주인공은 키트 파커(43) 하버드대 부교수 겸 미 육군 소령. AP통신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02년 하버드대 응용과학부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휴직하고 자원 입대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와 캠퍼스를 오가며 교수직과 군인의 임무를 병행해왔다.

응용물리학 박사인 그가 밀리페서가 된 동기는 9·11사태. 분노와 애국심으로 대테러전 참전을 결심한 그는 부교수직을 제의해온 하버드대에 1년간 무보수 휴직을 요청, 공수부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아프간으로 날아갔다. 2003년 캠퍼스에 돌아온 뒤 지난해 12월 다시 아프간 전장으로 향한 그는 무장세력들과 많은 교전을 치르는 등 실제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임용 앞두고 자원해 아프간전 참전한 하버드大 교수통해 文武의 조화를 본다”

미국의 밀리페서는 또 있다. 스티븐 허치슨 육군 소령. 심리학 교수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 폭탄이 터져 입은 부상으로 지난달 10일 바스라에서 사망했다. 향년 60세.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에서 전사한 최고령 현역 군인.

그는 1966년 입대한 뒤 22년간 복무하면서 델라웨어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88년 전역 후 캘리포니아에 있는 클레어먼트대 등에서 조용하게 교수생활을 하던 그는 2007년 58세 나이에 다시 현역으로 입대했다. 동기는 역시 9·11사태. 재입대가 늦어진 것은 암에 걸린 부인이 2006년 사망할 때까지 간호했기 때문이었다.

이 두 사람에게서 문사(文士) 안에 자리잡은 무사(武士)적 정신을 본다. 나름대로 국가(안보)의 위기라고 생각되면 대표적인 문사랄 수 있는 교수일지라도 서슴없이 발휘하는 무(武)의 정신. 북한이 기습 공격을 가해 장병들이 죽어가도,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노골적으로 대남 무력 협박을 해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맞서기는커녕 교수 자리를 발판으로 공직이나 노리면서 정파적 편견에 사로잡힌 시국선언이나 내놓는 우리 교수들과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물론 병역 등 제도가 다른 미국의 교수들과 우리 교수들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또 미국의 밀리페서와 한국의 폴리페서는 교수사회에서도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부라도 거기에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정신과 문화가 깔려 있게 마련. 즉 폴리페서는 오로지 문(文)에 치중한 전통적 선비문화의 필연적 귀결인 반면 밀리페서는 문무의 성향이 조화를 이룬 미국에서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잘 알려진 출판사 대표이자 전통무예 연구가인 신성대씨는 저서 '무덕(武德)'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 500년간 고착화된 우리 민족의 문의 성향, 무의 결핍은 언제든 외세를 끌어들이고 주변국가의 침략을 유도할 개연성을 지닌다. 무의 정신을 강화해 문화 구조를 문무가 균형잡힌 것으로 개조해나가지 않는다면 굴종의 고삐를 영원히 끊지 못할 것이다.' 우리 교수사회에서도 폴리페서 대신 밀리페서가 나올 수 있도록 정신과 제도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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