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김상욱] 터미네이터의 비애 기사의 사진

블록버스터의 계절,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다. 본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터미네이터4'가 이미 기선을 제압한 듯하다. 터미네이터는 1984년 1편이 상영된 이래 올해까지 모두 4편이 제작되었으니까 벌써 25세의 나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지사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가 됐다. '터미네이터4'에도 잠깐 누드로 등장하여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미래에 인류는 기계와 생사를 건 전쟁을 하게 된다. 기계는 인간저항군 지도자를 없애기 위해 그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로봇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다. 시간여행과 로봇, 엄청난 액션을 절묘하게 버무리는데 성공한 영화 터미네이터는 이제 SF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이번에 개봉한 '터미네이터4'는 아이디어에 있어 참신한 맛이 덜하지만 로봇과 싸우는 액션은 여전히 볼 만하다. 하긴, 세번이나 우려먹었는데 또 뭔가 새로운 내용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놀랄 일인지도 모르겠다.

기계들의 반란. 현재의 과학기술은 아직은 이런 걱정을 하기 이른 수준이다. 제발 기계들이 반란을 꾀할 만큼 지능을 가져주길 바라는 상황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지만 인공지능의 출현은 머지 않은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 부문에서 인공지능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행기에서 조종사가 하는 일보다 기계, 즉 컴퓨터가 하는 일이 더 많다. 목표를 자동으로 추적하는 미사일과 같은 첨단무기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개발 등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점점 증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터미네이터의 미래로 가고 있는 것일까?

터미네이터가 보여주는 암울한 미래는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무시무시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란 생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생명과학의 위험성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무서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왜 계속해서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발전한다고 믿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과학과 관련이 있다. 이제 우리 주위에 웬만한 질병으로 죽는 사람은 별로 없고, 평균수명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올 겨울에 굶어 죽을까 걱정하는 일도 거의 없다. 모든 사람이 충분한 옷과 구두를 소유하고, 자신의 자동차로 이동을 한다. 이런 모든 물질적 풍요는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제공한 것들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과학적 사고방식 역시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유전자 수준에서 생물학적으로 뒷받침된다. 비가 안 온다고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지 않게 된 것도 과학적 사고방식의 결과다. 뭔가 어리석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볼 때 "제발 과학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풍요를 모든 인류가 누리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이 있고, 선진국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분명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그리는 암울한 미래는 과학기술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다. 과학기술이 가져다줄 지 모를 비관적 미래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제대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김상욱(부산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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