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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손수호] 화장실의 넛지


취객 하나가 앞만 보고 소변을 보다가 마무리할 즈음 변기에 붙은 파리를 발견했다. 잽싸게 조준 사격을 했으나 실패했다. 자리에 돌아간 뒤에도 자꾸 그놈이 생각났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그렇게 약한가. 쪼끄만 파리 한 마리 떨어뜨리지 못하다니…."

한참 후 다시 화장실을 찾아 그놈을 공격했다. 집중세례를 퍼부었는데도 악착같이 매달렸다. 소변량이 금세 바닥났다. 부아가 치밀었다. 술자리가 파장일 무렵, 오줌을 잔뜩 모아 세 번째로 화장실을 찾았다. 분노에 찬 물대포를 쏘았지만 이번에도 허망한 패배였다. 그리고 알았다. 파리가 아니라 파리 그림임을.

오래 전부터 미술계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그림이 부자 혹은 호사가들의 거실을 장식하는 좁은 용도에서 벗어나 대중의 삶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쓰이는 예화다. 변기를 장식한 파리 그림이 사회적 측면에서는 권위있는 미술관의 명화보다 낫다는 설명이다.

이 화장실의 파리가 사회과학에서 인용되면서 내용이 조금 달라졌다. 이른바 공항 버전이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측은 화장실의 청결을 위해 소변기 중앙에 파리를 그려 넣었더니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 가량 줄었다고 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넛지(Nudge)이론'이다.

넛지는 본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이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의 의미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그릇 크기를 작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소식(小食)을 유도한다. 인간이 합리적이긴 해도 완벽한 선택은 힘든 만큼 적절한 넛지를 가해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넛지가 작금의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넛지'의 저자인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백악관의 정보·규제 담당 실장에 내정되고 소비자금융보호국(CFPA)이 새로 생겼다. 둘 다 소비자의 충동에 정부가 부드럽게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국내에서는 강준만 교수가 '넛지 저널리즘'을 제창했다. 계몽과 훈계로 가득한 플래카드, 비분강개형 메시지가 넘치는 언론을 거명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사회의 경직성을 풀기 위해서는 더많은 파리가 필요할 것 같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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