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김성동] 이제 학부모 시대다 기사의 사진

요즘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앙 또는 지방 정부인 관(官)이 학교를 설립하거나 개인 또는 법인이 신청한 학교 설립을 인가해주고 있지만, 과거에는 학부모인 주민이 학교를 직접 설립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국가에 학교가 처음 도입될 때 어떤 유형으로 설립되었느냐에 따라 오늘날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 정도에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주민 주도형을 살펴보자. 북미에 도착한 영국 청교도들은 일정한 땅을 차지하면 한 칸짜리 '원룸 처치' 교회를 지어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주중에는 이 시설을 활용, 주민들이 교사를 뽑아 자녀들을 교육하는 '원룸 스쿨' 학교로 직접 운영했다. 우리의 서당도 주민들이 십시일반 곡식을 모으고 공간을 마련한 뒤 가르칠 훈장을 채용해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했다.

書堂도 ‘주민주도’형 학교

이 경우 학교 교육의 당사자 관계를 살펴보면 주민은 교원을 채용하는 고용 주체인 갑(甲)이 되고, 교원은 갑과 약속한 일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자로서 을(乙)이 된다. 을은 갑의 요구에 따라 갑의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고 교육의 성과를 갑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제도에서 교사가 학부모의 교육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면 그 교사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된다.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우리 속담도 훈장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를 말해준다.

관에서 주도하는 학교설립 유형은 주로 식민지 역사를 가진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 교육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식민정책에 따라 전국적으로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시·군마다 심상소학교 등 학교를 설립하고 교원을 파견해 철저히 식민교육을 시켰다.

이 경우의 학교교육 당사자 관계를 보면 조선총독부 등 감독관청은 갑이 되고 교원은 감독관청이 지시한 교육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의무를 지는 을이 된다. 을은 갑에게만 교육 성과를 보고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 제도에서는 학부모가 학교교육에 대해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학교에 그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권리도 채널도 없다.

더욱이 뿌리 깊은 관존민비의 전통 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쳐주는 조선총독부와 교원이야말로 학부모에게는 자녀 교육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감사드려야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 학교에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등장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학부모가 학교교육에 참여하도록 학교마다 사친회를 조직했고 그 다음으로 기성회를 두었다가 지금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 의한 초기의 관 주도 학교설립 문화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학부모는 학교교육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는 학교마다 사친회라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학부모와 교사가 하나되어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아이들의 교육 건강 보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제도다.

성과 평가에 직접 참여해야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학부모들보다 높다.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도 결코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 학부모들이 학교교육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학교 밖에서 찾게 하지 말고 학교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에 더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교교육 성과 평가에 반드시 참여토록 해야 한다. 이제는 학부모 시대다. 학부모가 학교교육의 주체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김성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 前원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