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死卽生의 각오로 개회 막는다? 기사의 사진

어제로 6·25 발발 59년이 지났다. 세월은 그렇게 간다. 감내할 수 없어했던 고통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증오도 세월에 풍화되어 이제 흔적 정도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세월만한 명의가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사이에 경제는 기적을 이뤘고 정치 또한 그에 못지않게 변화했다. 권위주의 시대는 서울올림픽 전 해의 '6·29선언'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국민은 16년 만에 대통령 직접선거권을 회복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시대를 거치면서 대통령의 임기 준수는 전통으로 확립되었고, 한국 정치의 심각한 고질 가운데 하나였던 보스정당체제가 해체되었다.

우리 복주머니 이게 한계인가

노무현 시대를 맞고 보낼 즈음해서는 관권선거나 금권선거의 관행도 거의 사라졌다. 지역감정 같은 부정적 변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선거가 '민심의 반영'임을 의심하는 눈길은 걷혔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민심의 심판'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진 것이다.

그런데 개인에게나 국가에나 늘 좋은 날만 허락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급속한 정치민주화의 뒤꼍에서는 격렬한 사회적·국가적 균열이 진행되었다. 불신 혐오 증오 저주의 협곡이 정치발전의 성과와 의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우리의 복주머니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가장 위험한 현상이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경시다. 법과 제도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달리 합의된 행위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저마다 자기 기준을 들고 나와서 그 정당성을 주장한다. 자신은 선의 편에, 상대는 악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법'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하자 민주당 강경파는 본회의장 입구를 봉쇄했고 정세균 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를 여는 것이 정당과 국회의원에게는 죽기를 각오하고 저지해야 할 일인가?

상대가 악법을 처리할 게 눈에 보이듯 하니까 원천봉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소수 정당의 처지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악법'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점일 뿐이다. 궁극적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정례 선거를 제도화한 게 아니던가.

최종적 판단은 국민 몫일 텐데

정권교체의 기회는 5년마다 온다. 여당이 힘으로 '악법'을 만들어내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도 그 정도의 수준은 되어 있다. 국민도 이젠 정당 수뇌들만큼 똑똑해졌다는 뜻이다. 그 덕분에 여야가 집권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았는가.

독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5년 단임의 전통이 확립된 나라에서, 또 정부 교체 후 직전정부에 대한 사회적·사법적 심판이 관행화되다시피 한 나라에서 독재자가 나타난다? 아마 주장하는 측에서도 그 가능성을 믿지 않을 것이다.

국회를 기어이 무력화시켜야 하겠다면 하나의 대안이 있다. 국회를 폐쇄해버리고 광장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치를 흉내 내면서…. 당연히 국회의원들도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야 옳다. 배지를 떼고 세비는 포기할 일이다. 아고라에 참여하는 모든 시민에게 일당을 지급하든지 아니면 모두가 무료 봉사를 하게 하든지 결정하면 된다.

정당이나 의원은 누가 무엇을 보장해줘야만 국회를 열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의정에 활력을 부여하고 그 중추적 역할을 하는 능동적 존재다. 그 조건 위에서 대의민주정치는 성립된다. 이게 상식이다. 상식이 무시·외면되는 토양은 대의민주정의 무덤이다. 역사와 경험의 교훈이다.

논설고문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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