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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학생 두 명이 서울로 유학을 왔다. 한 학생은 하숙을 하고, 다른 학생은 자취를 한다. 둘 다 생활하는 데 만족과 불만족이 교차한다. 하숙생은 해 주는 밥을 얻어먹어서 편하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괴롭다. 자취생은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서 좋지만 밥 짓고 설거지하기가 귀찮다.

둘이 가끔 돌출 행동을 한다. 하숙생은 음식이 물릴 때면 눈치껏 라면을 끓여먹고, 자취생은 밥 차리기 싫어지면 주인집을 기웃거린다. 양쪽 다 집주인의 눈총을 사기 십상이다.

글에도 곁방살이가 있다. 본문의 흐름과 관계없이 설명 차원에서 끼어든, 일종의 삽입어다. 어떤 방식으로 끼어들었는지에 따라 하숙생과 자취생 신분으로 나뉜다. 하숙의 예로는 '철수가, 별로 반가운 사람은 아니지만, 놀러 왔다'가 있고, 자취의 예로는 '철수가, 어제는 이름이 수철이었지만, 놀러 왔다'가 있다. 하숙생은 주인집에 들어가 있으므로 살림살이를 다 갖출 필요가 없다. 즉 주어가 생략되었는데, 예문에서는 문장의 전체 주어 '철수'가 삽입어의 주어 노릇까지 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하숙생의 엄마(주어) 노릇을 하는 것이다. 자취생은 독립해서 살림을 차려야 하므로 본인이 직접 엄마 노릇까지 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문처럼 주어인 '이름이'를 따로 갖추었다.

이들도 가끔 돌출행동을 한다. 하숙생이 자취생 행세를, 자취생이 하숙생 행세를 하려는 것이다.

'경찰이 도둑에게, 끝내 부인했지만, 돈을 훔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이 문장에서 '끝내 부인했지만'은 삽입어다. 주어가 안 보이니 하숙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하숙생은 누가 지은 밥을 먹고 있을까. 처지를 생각하면 주인집 밥을 먹어야 한다. 곧 주어인 '경찰이'와 호응되어 '경찰이 부인했다'는 뜻으로 읽혀야 한다. 하지만 글의 내용은 도둑이 부인한 것이다. 자취생이 주인집 식탁에 앉은 꼴이다. 주어를 따로 내세워 '그 도둑이 끝내 부인했지만'으로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만약 '도둑'이란 말이 반복되어 껄끄럽다면 두 문장으로 가르는 등 다른 표현 수단을 찾는 게 좋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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