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용웅] 재계가 투자 나서야 기사의 사진

정부 고위 관리들이 재계에 대한 불만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은 민간부문의 소비가 살아나고 투자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아직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윤 장관은 이달 초 열린 회의에서도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가 늘지 않아 국내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도 이달 초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로 확충된 재정으로 기업의 부도와 파산을 막아줬는데 기업의 역할은 미진하다"며 기업의 투자부진을 꼬집었다. 앞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 관리들도 투자부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재계가 정말 얄미울 만도 하다.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올해 28조900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또 법인세 감면 등 대기업 투자유인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대기업은 먼산 쳐다보듯 하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기업에 지나칠 정도로 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전 정권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각종 기업규제 정책들을 과감하게 풀어줬다. 토지거래허가제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죄 지은 재벌 회장들에게 사면도 해줬다. 하지만 결과는 영 딴판이다. 규제가 풀린 만큼 기업들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이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 재계는 대통령에게 솔깃한 투자계획을 밝혔다. 삼성은 사상 최대 규모인 27조8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30대 그룹의 투자 계획액은 전년보다 27% 늘어난 9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삼성을 비롯한 재벌 그룹들은 실제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밝힌 600대 기업의 투자실적을 다 합쳐봐도 90조원이 안 된다. 올해는 더하다. 정부 조사 결과 지난 1분기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나 감소했다. 1998년 4분기 이후 최저치다. 4월에도 25%나 줄었다.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올 들어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은 날로 늘어나 자본금의 7배에 달하고 있다. 기업이 투자는 하지 않고 돈만 잔뜩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제가 살아날 리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1만9000명이나 줄었다. 반면 실업자는 93만8000명으로 전달보다 5000명 늘었다. 지난주 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에서도 밝혔듯이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기업이 지금처럼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경기회복은 요원하다.

고위관리들이 재계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여력이 없어 민간분야의 투자활력이 살아나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마디로 민간투자가 이뤄져야 국민들이 먹고 살기 편해지는데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라는 얘기다. 물론 기업이 투자를 하고 안 하고는 자유다. 하지만 기업이 규제완화의 과실만 챙기고 투자를 안하는 것은 상도의에도 어긋난다. 경제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히고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재계가 투자에 나서야 한다.

이용웅 경제부장 y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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