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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의 화폐 단위인 렘피라(Lempira)는 사람의 이름이다. ‘신의 지배자’라는 뜻의 렘피라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북부 고지에 거주하던 렌카족 통치자였다. 그는 1537년 이곳을 점령해 원주민을 착취하던 스페인에 맞서 3만여명의 인디오와 함께 항거한 것으로 유명하다. 화폐단위로 결정된 것은 물론 ‘1렘피라’ 지폐 전면에 그의 얼굴이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렘피라는 전쟁발발 2년 뒤 살해당했고, 전쟁은 스페인의 승리로 끝났다. 스페인은 원주민들을 더욱 혹사했다. 온두라스가 정식으로 독립한 때는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1838년이다.

온두라스도 중미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독립한 뒤 미국과 갈등관계를 겪었다. 미국이 한때는 무력으로, 한때는 온두라스 군부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바람에 군사 쿠데타가 수차례 이어지는 등 정정(政情)은 극히 불안했다. 덩달아 경제도 피폐해졌다.

그러나 1981년 4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 민주적 선거가 처음 실시된 이후 최근까지 여야 간 정권교체는 비교적 무난하게 이뤄졌다. 중도좌파 성향의 자유당 집권기간이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당보다 다소 길지만, 여하튼 두 정당은 여야를 넘나들었다.

이런 와중에 대법원과 군부가 현직 대통령을 추방하는 ‘후진국형’ 돌발사태가 또다시 벌어졌다. 임기가 내년 1월까지인 자유당 소속의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임기를 연장하려 개헌을 추진하자, 개헌 국민투표 당일(28일) 쿠데타가 발생해 셀라야 대통령을 코스타리카로 축출한 것이다. 개헌을 위헌이라고 선언한 대법원이 군부를 동원했다고 한다. 온두라스는 셀라야 대통령 지지자들과 군부의 대립으로 혼돈상태다.

무리하게 집권 연장을 꾀한 대통령과 집권 연장 저지를 명분으로 물리력을 동원한 쿠데타 세력 중 어느 쪽을 비난해야 할지 알쏭달쏭하다. 여기에다 셀라야 대통령과 절친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쿠데타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고, 셀라야 대통령의 복권을 위해 군사적 개입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는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온두라스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렘피라는 알고 있을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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