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장승헌] 공연계의 진품 명품 기사의 사진

명품은 우리 소비생활에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의류는 물론 가방, 구두, 벨트, 지갑, 안경에 이르기까지 백화점 공간 쇼윈도를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외국 명품 브랜드 제품이 쇼핑객들의 지갑을 유혹한다.

해외여행자들은 저마다 면세점에 들러 평소 점찍어 놓은 유명 브랜드 명품을 구입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명품 제품들을 구입하려는 유행병이 번지더니 이제 명품이라는 단어는 일상 용어가 됐다.

공연예술계도 예외가 없어 보인다. 명품 발레, 명품 국악, 명품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명품 수식어를 붙인다. 왜 공연예술이 명품이어야만 할까. 고객에게 물건 팔듯 상품으로서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명품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손쉬운 마케팅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 유명 단체의 내한 공연을 보고 있으면 즐거움보다 불쑥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출연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우리 관객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면 더욱 그러하다. 외국에서 저녁시간 공연장을 찾았을 때 배우와 무용수들이 혼신을 다해 몰입하고 관객을 향해 몸을 던지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준다. 반면에 우리의 공연장에서 사뭇 달라진 그들의 맥빠진 공연은 배신감을 낳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공연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거나 수준 있는 현지 관객들에게 검증 받고 세련된 매니지먼트를 거치기 때문이다. 반면 극장예술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공연 작품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특히 대규모 마케팅으로 무장한 뮤지컬의 홍수 시대에 순수 기초예술 분야인 연극이나 무용, 국악 제작 현장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가령 1년에 한번 공공기관이나 문화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 이미 공연장 대관이 끝나 있다. 어렵게 수시 대관 신청을 해서 공연 날짜를 받아 막을 올려도 초연은 어설픈 리허설처럼 허둥지둥 치러지고, 관객들에게 이렇다 할 기억을 남기지 못하고 끝난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단발성 공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관람한 연극 한 편이 필자에게 오랜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공연장이 직접 제작을 했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극작가와 연출자를 선정해 함께 작업한 창작 공연이었다. 잔잔한 목소리로 이어가는 서정적인 연출 기법과 출연진의 연기 앙상블은 2시간 넘는 상연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극장을 나와서도 연극의 대사와 분위기에 잠시 취해 있었다.

이러한 진품 공연이 나올 수 있는 인프라와 환경을 마련키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해외 무대 진출을 위한 매니지먼트와 제작 환경이 조금만 진화한다면 우리 작품들도 당당히 세계 시장에서 명품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오는 가을 개최될 공연 견본 시장인 '서울 아트마켓'에 선정된 몇몇 작품 목록이 현장 기획자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기존 작품들 중 재공연이 힘든 작품들을 선별해 외국의 기획자들이나 예술감독에게 선보이는 쇼케이스 행사도 마련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이를 계기로 우리 공연 시장의 여건이 개선되고 이른바 진품 공연을 많이 만드는 지혜와 정책이 모색되기 바란다. 우리 예술가들의 땀과 에너지가 진하게 묻어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진품을 옥석처럼 가려내는 우리 관객의 성숙한 안목 또한 절실하다.

장승헌(국민대 겸임교수·공연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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