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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서를 줄줄 외워야 했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최남선이 선언서 작성을 위임받아 3주일 만에 탈고한 초안을 감수한 사람은 위창 오세창. 원고를 손보고 난 뒤 "요즘 젊은애들은 한문을 너무 몰라…"라고 말했다. 오세창이 55세, 최남선이 29세 때 일이다.

오세창(1864∼1953)이 왕과 사대부, 중인, 승려 등 조선시대 명인 1136명의 편지와 시 등 필적을 모은 '근묵(槿墨)'의 영인번역본이 출간됐다. 5권에 100만원 하는 책값 이상의 문자향(文字香)이 그윽할 것 같다. 본보 30일자 1면에 사진이 실린 명필 황기로의 초서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오세창은 김옥균 박영효 등에게 개화사상을 심어준 오경석의 아들이다. 오경석은 역관(譯官)으로 청나라를 왕래하면서, 또 선배 역관이자 추사(秋史) 김정희의 제자인 이상적과 교류하면서 고증학(考證學)의 분야인 서화 감식에 조예를 얻었고 이를 아들에게 전했다. 그는 고증할 때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금강역사의 부리부리한 눈으로 투철하게 살피고 가혹한 아전의 손길로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뜻.

오세창에게 건너온 추사의 금강안이 어디로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서울대 교수와 통일원 장관을 지낸 국제정치학자 이용희(1917∼1997)는 연희전문 시절 오세창에게서 그림 보는 눈을 익혔다. 그는 본명 대신 호 동주(東洲)를 사용한 이동주란 이름으로 미술사 명저를 여러 권 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동주 생전에 집 문턱을 자주 넘나들었고 사후에는 장서 수만권이 명지대로 넘어갔다. 그것을 추사의 일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전형필(1906∼1962)을 문화재 수집의 길로 이끌어 오늘의 간송(澗松)미술관을 있게 한 것도 오세창이다. 간송미술관은 김정희의 진적(眞蹟)도 다수 수장하고 있다. 전시장 보화각(褓華閣)의 현판은 오세창의 글씨다. 수장품 수만 점이라는 이 미술관을 통해 최완수 실장이 이끄는 미술사학계 주류 간송학파가 형성됐다. 많이 본 사람은 당할 수 없다. 금강안의 첫째 조건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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