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터넷이 한국에 등장한 것은 불과 15년 전인 1994년 6월이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화살같이 빠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등장과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인터넷은 한국의 정치사회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었다. 변화하는 세상을 자동차 속도에 비유한다면 기업은 시속 100㎞로 달리고 있고 정부도 개인도 그에 못지않은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곳 정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치 모래시계를 15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여야가 국회에서 격돌하는 상황을 보도한 한 신문기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시장 바닥에서도 듣기 힘든 고함과 욕설, 눈을 부라리는 삿대질과 몸싸움, 그리고 정회소동, 구시대의 그것과 하나도 다른 게 없다. 서로가 상대만 악질이고 자기들은 억울하다고 아우성들이니 국민으로 할 말이 없다." "이 기막힌 추태들을 엮어내는 국회의원들이 국민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근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이다.

15년 전 14대와 똑같은 18대 국회

2009년 여름, 여야가 격돌하는 국회는 15년 전에 비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당장 수만에서 수십만명의 대량 해고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를 급박한 상황에서도 무능한 정치권은 서로 '떠넘기기' 공방만을 벌이고 있다.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뒤늦게 소집된 6월 임시국회는 여야의 대치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민생은 안중에 없고 국민의 이름을 팔아 정파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거여인 한나라당은 덩치 값도 못하고 있고,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해 소수 야당이 된 민주당은 악다구니로 맞서고 있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깡그리 무시되는 2009년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의 가슴을 내리누르는 답답함 그 자체다. 한나라당이 자존심을 내걸고 이번 회기 내 처리를 다짐하고, 민주당이 목숨을 걸고 막겠다는 미디어 관련법조차 경제난으로 기약 없는 고달픈 삶을 사는 국민에게는 관심이 없는 이야기일 뿐인데 정치권은 민초의 고통에 오불관언이다. 어느 정치원로의 말대로 민주주의 교육을 더 많이 받았을 새 세대들이 구 정치인을 밀어내고 국회에 들어왔는데 정치력은 더 없어지고 국회는 과거보다 더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의원의 도덕성도 15년 전 수준에서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6월13일 한나라당 허범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18대 국회 들어 총 10명이 당선무효로 의원직을 잃었다. 현재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계류 중인 의원들도 6명이다. 아마 역대 최고가 아닌가 싶다. 한국외국어대 윤모 교수는 1994년 72개 직종을 놓고 도덕성을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국회의원은 72위였다. 더 내려갈 데가 없는 꼴찌였다. 똑같은 설문을 갖고 지금 여론 조사를 한다고 해도 그 순위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역사는 유권자를 통해 심판한다

최근 인터넷에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를 반영한 '못살겠다!대한민국'이 화제다. 신인 가수 미스 조와 래퍼 JJ가 부른 이 노래는 성난 민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는 개판 경제는 막판/(중략)/공중부양 슈퍼맨을 봤어, 전기톱과 해머도 봤어./정치깡패 양복을 벗어 부끄러운 TV뉴스의 방송/(중략)/여의도는 인간 난지도/(중략)/미쳤다. 미쳤다. 세상이 미쳤다./높으신 분들아 그러지 마라." 1970년 5월 사상계에 실렸던 시인 김지하의 오적(五賊)의 후속편을 보는 것 같다. " 또 한 놈 나온다/국회의원 나온다/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중략)/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짧지 않은 세월 정치 외야석에서 국회와 정치인을 취재하면서 역사의 엄정함을 보았다. 15년 전인 지난 14대 국회 본회의에서 막말과 추태를 부렸던 이모, 반모, 황모, 하모, 노모 의원이나 법사위에서 '취중 추태'를 부린 정모 의원 등 신문에 그 이름이 올랐던 의원들 모두가 유권자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떡볶기집 발언'에 화가 난 그 집 주인 아들 박모씨의 충고를 여야 의원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여러분은)국민의 대표로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하라고 국민들이 뽑은 대표입니다. 그만들 싸우시고 제발 이제 정신들 좀 차리십시오. 국민의 대표답게요."

ryo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