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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로 글바로] 가장 잘하는 나라


동네에 서글서글한 아저씨가 산다. 길목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이웃집 아저씨한테는 "안녕하세요, 요즘 잘되시죠?"라고 묻고, 총각한테는 "어이, 요새 잘하고 있지?"라고 인사한다.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예" 하고 대답한다.

이 인사말을 찬찬히 뜯어보자. '잘되시죠?'는 좀 뜬금없는 표현이다. 대체 무엇을 가리켜 잘되냐고 물은 것인가. '잘하고 있지?'는 무엇을 잘하냐는 뜻인가. 이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물었지만 듣는 사람은 뜻을 알아차리고 응대한다.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글은 이렇게 표현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 앞의 표현에서 '잘되다'는 자동사이고 '잘하다'는 타동사이다. 자동사에 주어(소주어)가 없거나 타동사에 목적어가 없으면 문장으로서 구색이 갖춰지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한 문장성분을 넣어 '사업이 잘되지?' '공부를 잘하고 있지?'라고 물어야 잘 통한다.

글의 완성도를 외면해야 할 때도 있다. 목적어 없이 타동사만 쓰는 것이다. 첫째는 대상이 포괄적일 때다. '우리도 이제 도와주는 처지가 됐다'가 그런 예이다. 이 경우 목적어는 '남'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범위가 넓은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둘째는 목적어를 대놓고 드러내기 부담스러울 때다. '그 일을 강행하면 사람들이 우려할 수 있다'가 그것이다. '우려하다'는 대개 '건강을 우려하다'처럼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는 '후유증'이나 '뒤탈' 정도가 될 수 있는 그 목적어를 콕 집어 표현하자니 왠지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릴 것만 같다. 해서 적당히 빼고 넘어간다.

며칠 전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휴대전화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 중 이런 게 있다. '덕분에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때의 '잘하다'는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이 무엇을 가장 잘한다는 말일까. 세계적인 경기 침체기에서 한국이 가장 빨리 회복하고 있다는데 그것을 뜻하는가. 모든 분야에서 1등은 아닐진대 이 경우라면 목적어를 적시하는 게 좋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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