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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국민 대표기관의 초라한 초상

[백화종 칼럼] 국민 대표기관의 초라한 초상 기사의 사진

"고스톱도 패 돌리고 나서 규칙을 바꾸는 법은 없다." 2년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가 한 말이다. 당시 규칙은 후보 경선에 일반인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토록 돼 있었다. 이명박 후보 측이 그 가중치를 높이는 쪽으로 규칙을 해석하려는 데 대해 박 후보는 "자기가 유리하게 룰을 바꾸면 국민이 한나라당을 신뢰하겠느냐"고 반발했다.

이제 와서 어느 쪽 주장이 옳았느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미디어법을 비롯하여 국정에 임하는 여야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난 삽화 한 컷이다.

여야 식언 경쟁하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미디어법 타개를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책위의장 등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제안했다. 닷새 만인 3일 민주당의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이를 전격 수용했다. 그러자 안 원내대표는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4자회담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4자회담은 민주당의 시간 끌기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자신의 제의를 거둬들여 버렸다.

안 원내대표로선 민주당을 등원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4자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막상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자 그의 말대로 민주당의 지연작전에 말려들 수도 있고, 비정규직법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양당만이 회담할 경우 소외된 자유선진당의 반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더라도 비판을 면하긴 어렵다. 4자회담을 제의하려면 이러저러한 전제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고 미리 밝혔어야 했다. 그런데 불쑥 제의부터 해놓고 상대가 이를 받으니까 뒤늦게 조건을 붙인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표결 처리 합의"를 깼다고 민주당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민주당도 한나라당을 탓할 처지가 못 된다. 민주당은 지난 3월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표결 처리키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입법에 반영하자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를 무시하고 있다. 합의서에 "여론을 수렴하여"라는 문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론 수렴의 방식이 꼭 여론조사여야 한다는 건 억지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여론 수렴"이라는 표현 대신 "여론조사"라고 못 박아야 했다.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걸 탓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합의해줘 놓고 뒤에 와서 딴소리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고스톱판도 이보단 낫겠다

박 전 대표의 말대로 고스톱판에서도 합의된 룰은 지켜져야 하는데, 여야의 합의 문서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지도자가 한 말이 명분 없이 뒤집히는 곳이 국회라면 그게 야바위판이지 어떻게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하겠는가. 여야는 이제라도 '조폭 집단' '없느니만 못한 집단'이라는 등의 험한 말을 덜 들으려면 약속을 지키고 자기 말에 책임을 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당장 미디어법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민주당은 무조건 안된다는 태도를 바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6월 국회 처리라는 당초의 합의를 지키도록 노력하되, 시간이 모자라면 논의를 연장토록 여당을 설득하는 게 순리다. 여당도 최대한 양보하여 여야 간 합의가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디어법들 중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우선 합의 처리하고 쟁점 법안과 조항들은 좀 더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백화종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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