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정희] 존엄生,내 친구 기사의 사진

존엄사 하지 않은 내 친구는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존엄한 삶'을 살고 있다. 22년 전 그는 김 할머니와 같은 식물인간이었다.

이희원(47). 그는 현재 춘천소년원 의무과장으로 담 안에 갇혀 있는 청소년들을 돌보는 의사다. 죄를 지은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그를 보노라면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직업인의 자세를 보는 것 같아 여간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그는 서울대 의대생으로 공부와 씨름하던 스물다섯의 어느 날 동맥 이상으로 쓰러져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의학적으로는 실외투증후군(失外套症候群) 또는 천연성(遷延性) 의식장애로,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전신이 경직된 채로 대사(代謝)라는 식물적 기능만을 하는 인간 희원. 우리는 그의 소식에 공황 상태에 빠졌다. 부모와 가족의 슬픔은 말해 무엇하랴.

그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몇 달을 보냈다.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조심스럽게 돌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께 기도로 의지하며 매달렸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가 다소 호전되면 산소호흡기를 떼 자력 호흡을 도왔다. 식물인간에게 가래와 폐렴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호흡기를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다. 그는 코로 주입하는 유동식을 먹고, 잠자는 가운데 배설을 하며 1년여를 버텼다. 그리고 어느 날 긴 잠에서 깨어났다.

의식이 깨어난 그는 여전히 전신 경직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그를 기도와 재활치료로 일으켜 세우고 휠체어에 앉게 했다. 그리고 투병 4년여 만에 그는 목발을 짚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왔다.

그후 희원은 복학해 '4년여의 공백'을 딛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쓰러지기 전 수업 내용을 모두 기억해 합격한 것을 보면 내가 단지 좀 오래 잤을 뿐"이라며 웃었다. 우리는 그의 선한 눈빛을 피해야 했다.

의사인 그가 말한다. "뇌사자는 산소호흡기를 떼면 살 수 없다. 뇌파도 없고 자발적 호흡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인간은 산소호흡기를 떼도 살 수 있으므로 치료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호흡기를 떼면 가래나 폐렴 등으로 위기를 맞게 되나 다시 호흡기를 붙이는 등의 대응을 하면 된다. 안락사라는 명분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살인 행위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5월21일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할 때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식물인간에게) 연명 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재판 건에 해당하는 김 할머니는 그래서 지난달 23일 오전 호흡기가 제거됐다.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할머니는 5일 현재 생존해 있다.

친구가 말했다. "하나님의 영역을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관장하는 것은 사회적 살인이나 다름없다."

늙은 부모를 산속 구덩이에 가두고 굶겨 죽인다는 고려장의 설화를 기근과 병마에 시달리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 안되는 바 아니다. 한데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설화일 뿐 어떤 기록도 없다.

'존엄사'를 만들어낸 여론은 신의 영역까지도 침범하는 어리석은 괴물과 같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 사회는 재판부의 판시를 두고 진실의 잣대가 아닌 양심의 잣대로 호통쳐야 하는데도 그러는 선지자가 없다.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전정희 문화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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