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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엄앵란 도금봉 등이 열연한 영화 '적자인생'(1965)은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원로 김수용 감독 작품이다.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내주고 세상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기를 쓰고 돈만 모으려는 노랭이 주인공. 아내도 그저 바라만 볼 수 없어 직업전선에 나서고. 어느새 부부 사이는 금이 가고 가정은 풍비박산 직전. 그제야 주인공은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이 적자였다고 고백한다.

'적자인생'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됐던 1960년대 작품임을 감안하면 꽤나 반골적인 내용이다.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 산업화를 이루자는 게 시대의 요청인데 영화는 그 이면을 긁고 있다.

당시 정부는 부족한 투자자본 확보를 위해 저축을 독려했다. 초중고생들도 1인 1통장을 마련토록 했다. 공업화는 코 묻은 돈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제는 만성적인 고물가였다. 인플레 때문에 실질 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면서 저축은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한 번 뿌리내린 '저축=빈곤탈피=산업화'란 시대정신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축률을 자랑했던 배경이다. 서민들이 목돈 마련을 하자면 달리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아 저축이 유일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20%대를 유지하던 저축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대로 급감했다. 씀씀이가 커지고, 경제환경 악화로 이전만큼 소득이 늘지 않게 된 것이 주 원인이다. 특히 저소득층에게 저축은 이미 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주요 18개 회원국 가운데 내년 한국의 저축률이 3%대로 최하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선진국들은 최근의 경제불안 때문에 저축을 늘리고 있는데 우리는 되레 줄이고 있다.

일시적 저축률 하락은 소비지출로 이어져 경제 성장을 유도하지만 너무 급격한 저축률 하락은 심상치 않은 문제다. 당장 투자자본 공급 능력 부족으로 경제 성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저축 없는 노후, 고령화 시대의 적자인생들이 걱정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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