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연구 편식’이 문제다 기사의 사진

지난 토요일 원로 과학자를 뵈러 경기도 과천엘 다녀왔다. 김준민(95)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이기도 한 김 교수는 식물생태학의 태두이자 세계적인 학자로 1946∼79년 서울대에서 봉직하고, 정년퇴임 후에도 연구와 집필, 강연 등으로 역동적인 삶을 사시는 분이다. 3년 전엔 '들풀에서 줍는 과학'이라는 에세이로 과학문화재단(현 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과학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원로 과학자를 찾는 이유는 우리 현대 과학기술 비사(秘史)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1962년에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이후 반세기가 채 못 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활약상에 대하여 심도 있고 체계적인 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뜻 맞는 사람 몇몇과 작년부터 과학기술 비사 발굴을 시도해 오고 있다. 연만하신 과학기술 원로들이 타계하기 전에 숨가빴던 기술입국 노력의 궤적을 반추함으로써, 주춤하고 있는 과학기술계에 추동력을 제공하고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조금은 순진한 생각에서다.

“과학기술 홀대 불평만 말고,자기 분야에서 끈기 갖고 매진하는 열정 아쉬워”

그 동안 만났던 분은 물리화학자 장세헌 박사, 원자력 산파역 윤세원 박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임관 성균관대 이사장 등이다. 과학기술 원로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오늘날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문제는 만연화된 이공계 기피 현상과 정부의 과학기술 홀대다.

그런데 김 교수는 달랐다. 오히려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과학기술이 시류에 쉽게 영합하는 세태를 꼽았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자신의 연구 영역이기도 한 생명공학과 관련해선 정부, 학계, 거기에 기업까지 나서서 올인하는 현실을 걱정했다. 그렇다 보니 정부와 산업계가 지원하는 연구비조차도 생명공학 분야에만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생명공학을 잘할 수 있는 DNA라도 가진 듯 착각하고 있지만, 이 분야도 우리가 최고 수준까지 도약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 너도나도 줄기세포 연구에만 매달리다가는 생물 분야에서 우리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소외되기 십상이고 이 같은 '연구 편식'이 결국은 총체적인 측면에서 과학기술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데 치중하는 세태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과학 연구, 특히 생물학 같은 기초 연구는 무엇보다 열정과 끈기가 있어야 해요. 지원이 있든 없든, 풍족하든 부족하든 개의치 않고 진중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데 요즘은 업적을 부풀려 연구비를 챙기려 하니, 결국 그게 매명 아닌가요."

그는 지구온난화, 산성비 등에 대해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했다. 인류가 지구온난화를 피하기는 어렵지만 그로 인해 초래될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처할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한편 자신을 포함한 1세대 생물학자들의 과오를 성찰하기도 했다. 민둥산 천지에서 조림강국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식물생태학계가 간과함으로써 소중한 기록 확보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백수(白壽)를 앞둔 고령에도 명민한 기억과 청년 같은 열정으로 꼬장꼬장하게 설파하는 노 과학자의 음성을 들으며 우리가 너무 호들갑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