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탈북자,“먼저 다가온 미래” 기사의 사진

요즘은 실향민이라는 '점잖은' 말이 사용되지만 얼마 전만 해도 6·25전쟁 발발을 전후해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흔히 '3·8 따라지'라고 불렸다. 어감에서부터 느껴지듯 멸칭이다. 3·8은 38선이고, 따라지는 한 끗을 의미하는 화투 노름판의 은어. 풀이하면 38선을 넘어온 하찮고 귀찮은 존재라는 뜻쯤 된다.

이 말은 남쪽 사람들만 쓰지 않았다. 전화(戰禍)나 공산당의 학대를 피해 그저 몸 하나만 간신히 빠져나온 월남 피난민들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모든 것을 북녘에 남겨두고 맨손으로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굴러온 돌'마냥 살아야 하는 신세가 얼마나 한심하고 처량했을까.

이제 어쩌면 '제2의 3·8 따라지'라고 해도 좋을 만한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공식용어로 북한이탈주민, 통칭 탈북자 혹은 새터민이다. 지난달 21일 현재 모두 1만6354명. 1998년까지 947명이던 것이 2000년대 들어 매년 10% 이상 늘어나 지난해의 경우 2809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3000명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대체로 경제적 난민이지만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등 정치적 이유에서 탈북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게 틀림없다. 지금도 중국 등 제3국에서 떠돌면서 남한 입국을 시도하는 북한 주민들이 상당수다. 또 미확인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인에게 팔려가느니 남한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북한 여성들을 겨냥한 브로커들의 탈북 커넥션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탈북자 적극 지원하고 감싸안되 잘못된 신념체계도철저하게 씻어내야”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동화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탓이다. 우선 분단 60년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로 언어와 사고방식의 차이 등 문화적 장벽이 있고, 정규직 직장을 얻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인 데서 보듯 경제적 진입 장벽도 없지 않다. 또 남한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등 사회적 장벽도 있다.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나 일탈행위자들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동기야 어떻든 남한에 넘어온 탈북자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탈북자 스스로도 적응하고 동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일의 대부분은 남한 사회의 몫이다. 즉 정부는 탈북자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고, 국민은 그들이 소외감을 털어버릴 수 있게 끌어안아야 한다.

왜 그런가. 탈북자들은 단지 남한사회에 귀찮고 하찮은 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씨가 지적했듯 그들은 "먼저 다가온 미래"다. 또 일종의 '선험자(先驗者)'로서 통일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최전위에 서야 한다. 그래서 탈북자 대책을 놓고 '통일예행연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탈북자 대책과 관련해 정부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북한 정권의 끊임없는 세뇌로 만들어진 탈북자들의 잘못된 신념체계를 깨끗이 씻어내는 일이다. "탈북자들은 남한사회가 풍요롭고 자유스럽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하지만 6·25가 남침전쟁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믿지 않는다." 탈북자들과 많이 접촉해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평생 강제주입을 통해 가치화된 신념은 쉽게 고치기 어렵게 마련이다.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이 8일로 개원 10주년을 맞았고, 내년에는 제2 하나원이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12주 과정인 하나원 교육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더욱 충실하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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