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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손수호] ‘공간’ 500호


1966년 11월 첫선을 보인 잡지는 표지부터 달랐다. 일체의 장식 없이 '空間'이라는 글씨와 자잘한 발행 정보만 적었다. 다만 눈에 띈 것은 '건축·공간·예술'이라는 부제였다. 이번 500호의 표지는 잡지 499권을 서가에 꽂은 사진이었다. 과연 금자탑이었다.

이 잡지의 지령 500호를 축하하는 잔치가 며칠 전 담쟁이넝쿨 시원한 공간사 사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세월의 두께를 말해주듯 검버섯 핀 원로들이 많았다. 호스트는 지금 공간사 대표 이상림이지만 잔치의 중심에는 설립자 김수근(1931∼1986)이 있었다. 팔짱 낀 그의 사진이 크게 걸렸고, 공연장에는 "김수근 형님 안녕하시오 당신의 공간이 500호를 맞았으니 기뻐하소서!"라는 만장이 걸렸다.

43년 전 김수근이 창간한 잡지는 매거진이면서 저널이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나 KBS 본관을 짓는 과정에 반문화적인 행태가 나타나자 잡지는 가혹한 회초리를 들었다. 서울시청 앞을 호텔이 막자 "햇빛을 들게 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문화사랑방에서 나온 소리를 세상에 전했다.

'공간'은 건축 중심이었지만 '공간사'는 공연과 전시까지 품었다. 화랑은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유치했고, 소극장에서는 전위적인 공연물이 속속 올랐다. 당시 히트작 '관객모독'은 실제로 육두문자로 욕설을 퍼붓고 세숫대야로 물세례를 퍼부어 관객들이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월간지 한 권 제대로 낸다는 게 보통 일인가. 예나 지금이나 일개 건축사 사무소가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그래서 김수근은 100호 기념호에서 스스로를 다잡는다. "설사 등사판을 긁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내겠다." 이 정신은 그의 사후 장세양(1947∼1996)으로 이어졌으며 13번의 결간이 있긴 했다.

2007년 1월, 공간은 혁신을 선언했다. 잡지의 재원인 광고를 깡그리 없애 상업성의 굴레를 벗어던진 것이다. 대신 모든 기사에 영문을 병기하고, 이미지 하나하나마다 출처를 표시하며, 단신을 쓴 저자의 프로필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그 결실로 지난해 미국의 학술색인인 톰슨 로이터에 등재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500호 연륜의 문화잡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자랑이자 행운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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