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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배운 사람치고 백골징포니 황구첨정이니 하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죽은 사람(백골)이나 어린이(황구)에게조차도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조선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세금은 나라가 정식으로 거둔 것이 아니다. 각 고을 수령이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불법적으로 징수했다. '백골'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들어간 것을 보면 징세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백성들이 그 말을 지어냈지 싶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생겨나면 그에 걸맞은 이름이 붙는다. 그 이름에는 가치중립적인 것도 있고 가치판단이 들어간 것도 있다. '5·18 사건'은 전자에 가깝고, '5·18 민주항쟁'은 후자에 가깝다. 강부자 정권이니 추미애 실업이니 하는 것도 후자에 가깝다.

사람들은 때로 정식 명칭 대신 별칭을 만들어 사용한다. 요즘처럼 이념논쟁이 한창일 때는 더욱 그렇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촛불시위는 한때 대립되는 이념 주체들이 모두 횃불시위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한쪽은 촛불을 횃불인 것처럼 과장하고 싶어서이고, 다른 쪽은 촛불이 횃불처럼 커졌으면 해서일 터이다.

이런 이름은 대개 부분적인 것만을 부각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진다. 듣는 사람들을 호도할 우려도 있다. 미디어법을 계속 미디어 악법이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그 법의 속성도 모른 채 악법이란 인식이 굳어진다. 실제로 '언론장악법'이나 '복면방지법'은 들어봤어도 그 법의 정식 명칭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험한 이름을 지은 게 먹혀든 셈이다.

이번에는 정부도 이름을 하나 지었다. 곧 죄악세다. 술·담배에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죄악세' 성격이란다. 두 품목은 안 그래도 세금이 많이 붙는다. 추가 징세 명목이 마땅치 않다. 그러니 험한 이름이라도 붙여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담배 피우고 술 먹는 행위를 죄악으로 간주하는 건 좀 심했다. 정치권이 험악한 이름을 짓는 건 그들의 태생적 속성 때문이겠거니와 정부가 그런 것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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