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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칼럼] 세금에 꼼수부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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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외환위기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업종이 주택건설이다. 금리는 치솟고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미분양 주택이 10만가구 이상 쌓여 연쇄부도를 불러왔다. 하지만 충격에서 헤어나 경기가 풀릴 때 가장 빠르게 달아오른 업종도 주택건설이다. 수요가 살아나 매매가와 전세가가 한꺼번에 치솟았다. 뉴밀레니엄에 접어들어 금리가 연 5%대로 떨어지자 전세 주택을 월세로 돌리는 사례가 급증했다. 2001년 정부는 극심한 전세난을 완화하기 위해 전세보증금에 대한 임대소득세 과세를 폐지했다.

감세를 통한 경제 살리기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감세 유보로 돌아서는가 싶더니 전세 보증금 과세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주택임대차 관련 과세체계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조세연구원 주최 정책토론회에서 3주택 이상 보유자를 대상으로 보증금이 3억원 이상일 때 과세하는 방안 등 몇 가지 안이 제시됐다. 조세형평성과 세원확보,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전세 보증금 과세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논리다.

임대주택 수급에 차질을 초래한다며 없앴던 세금을 그동안 사정이 바뀌었으므로 다시 도입하겠다는 말인데 타당성과 함께 시장에 미칠 영향에 심각한 의문이 든다. 정부는 이 대통령이 최근 중도 강화와 친서민 정책을 표방한 이후 기다렸다는 듯 전세 보증금 과세를 들고 나왔다.

“무리해서라도 稅收를 늘리려는 발상이 서민을 거리로 내몰 위험이 있다”

다주택 보유자에게 폐지된 세금을 다시 물려 '부자 증세' 본보기로 삼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음직하다. 지난 정권이 빈부격차를 부각시켜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주요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던 포퓰리즘을 답습하는 모습이다. 나쁜 짓은 빨리 배운다고 했던가.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감세를 기조로 삼았다가 기대한 효과를 보지 못해 정책을 선회할 수는 있다. 재정 적자가 너무 확대되면 불가피하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할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는 재정 형편을 솔직히 공개해 국민을 납득시키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부자 증세·서민 감세'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민심을 유혹해 어물쩍 넘어가려다가는 역효과를 보기 십상이다.

우선 전세 보증금의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에 나온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전세 보증금으로 주택을 추가 구입할 경우 자금 조달 비용이 줄어 귀속소득이 양도소득으로 전환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과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증금을 받아 또 집을 산 다주택자는 금융비용도 적게 물고 집값이 오르면 양도차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세금을 물려야 마땅하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러나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전세 보증금은 소득이라기보다 돌려주어야 하는 부채에 가깝다. 보증금을 은행에 맡기면 이자 소득세를 물어야 하므로 임대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에 해당된다. 토론회에서도 이런 이유로 전세 보증금 과세에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 전세 보증금에 세금을 물리면 8년 전과 유사한 전세난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비수기인데도 공급 부족으로 전세가가 급등하는 과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에 과세까지 겹치면 그나마 시장에 나온 전세 물량도 월세로 바뀌기 쉽다. 서민을 위한다고 생색내며 세수 증대를 꾀하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서민을 거리로 내몰아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악수가 된다는 지적이다. 토론회에서 함께 제시된 술 담배에 대한 죄악세 논의는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했다.

수석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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