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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손수호] 서울대 출판부


서양에서 대학출판부의 존재감은 크다. 여기서 나오는 책의 질에 따라 대학의 평가가 달라질 정도다. 미국의 하버드나 프린스턴, 시카고대,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는 모두 대학 출판의 정상급이다. 학파가 형성되거나 노벨상에 다가서는 지적 토양은 대개 대학 출판부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에 비해 국내 대학 출판부의 이미지는 완고하거나 딱딱하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리타분한 교양교재를 만들어 수지를 맞추거나, 바깥 상업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책을 내는 곳쯤으로 비쳐졌다. 출판부장은 교수들이 돌아가며 맡는 한직이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이화여대 출판부는 일찌감치 대중에 다가간 경우다. 1993년 첫선을 보인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십수만권이 팔리면서 외국 유학생을 위한 영문판까지 출간했다. 콘텐츠도 좋거니와 디자인부터 대학출판부의 칙칙한 냄새를 없앤 것이 주효했다. 방송통신대의 약진도 눈에 띈다. 교양도서 '지식의 날개', 학술도서 '에피스테메' 등 여러 브랜드가 있다.

서울대 출판부는 어떤가. 1961년 교내 인쇄소로 출발했다가 1975년부터 출판을 시작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방대한 양의 교내 간행물을 찍기 위해 자체 인쇄소를 두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가동 중이다.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순수학술서 목록이 1700여종에 이를 만큼 대학 출판의 최강자다.

서울대 출판부가 외부 인사를 CEO로 임명해 화제다. 현암사 전무이사 출신인 형난옥씨를 운영본부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형씨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시리즈로 법전 간행에 머물던 현암사를 굴지의 단행본 출판사로 키운 주인공. 올 4월 출판부라는 오랜 이름을 버리고 '출판문화원' 간판을 단 것도 이런 변신의 일환이다.

그러나 출판문화원 조직도를 보면 답답하다. 총장이 이사장으로 앉아 이사회를 주관하면서 예산과 조직을 통할한다. 그 아래 출판문화원장을 겸하는 상임이사가 있어 교수들로 구성된 출판위원회를 운영한다. 여기서 펴낼 책을 결정한다. 그야말로 층층시하. 서울대가 외부 전문가에게 출판부의 낡은 틀을 깨도록 요구하기 이전에 이런 낡은 조직부터 손봐야 하지 않을까.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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