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괜히 오만하다고 할까 기사의 사진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인사의 요체를 설명한다. "가까운 신하들이 '그 사람 어진 사람입니다' 한다 해서 바로 등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대부들이 입을 모아 '어진 사람입니다' 하더라도 때가 아닙니다. 온 국민이 다 '어진 사람입니다' 하거든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잘 살펴봐서, 정말로 어진 인물임을 알게 된 후에 등용하셔야 합니다."('맹자' 양혜왕편)

아득한 옛날의 그 가르침이 오늘에 새로운 것은 어인 까닭인가.

무슨 검증 어떻게 했기에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사표가 수리된 것은 지난달 5일이다. 후임자가 내정된 것은 그 후로 보름도 더 지난 그달 21일이었다. 여러 다른 배경이 있긴 했겠지만 그렇더라도 적임자를 고르기에 정말 애쓰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뜸을 들인 인사였다. 그런데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도덕성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그의 발을 건 여러 불미스런 사례들은 야당 의원들의 집요한 추적으로 드러나고 확인되었다고 한다. 권력의 정상부인 청와대, 국가의 모든 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그곳에서 무슨 검증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한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인가. 결과론이긴 하지만 "검찰청 주변의 평판에만 귀 기울였더라도 이런 낭패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떠돈다던가.

게다가 인재를 고르고 살피는 일은 그렇게 얼렁뚱땅 해치웠으면서도 무슨 배짱으로 총장 내정자의 동기·선배인 고검장급 8명의 사표는 왜 그리 냉큼 받아버렸는지 그 점도 어이없다. 청와대측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경시한 탓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오만하다는 소리를 듣지.

천 내정자 발탁의 배경은 훗날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청와대의 기강과 구성원들의 책임의식이 크게 이완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안 그러고서야 조각 인선 때 그처럼 호된 경험을 했으면서 또 이런 소동을 빚을 리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는 정동기 민정수석비서관 한 사람의 사퇴로 수습될 일이 아니다. 청와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 집 일이라면 그랬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니다. 이제 3년반쯤 남았을 뿐이다. 그간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 장악력과 견인력을 왕성하게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을 사회 일각의 극심한 저항과 충격적 사건 속에서 허둥대며 보내고 말았다. 유감스럽게도 취임 초기의 힘을 되찾기는 이미 틀렸다.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이는 사실이다.

물론 지레 풀이 죽을 필요는 없다. 여전히 대통령의 힘은 막강하다. 대통령과 참모들, 그리고 여당이 하기에 따라 리더십은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여건이 취임 초기보다 어려워졌을 뿐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겸손한 자세로 정성을 다한다면 만회할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공직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것을 마치 자신들 주머니 속의 물건이나 되듯 포상하고, 선심 쓰고, 신세 갚고, 힘 자랑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면 그 순간 '실패한 정부'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정권 담당자들 모두 명념할 일이다.

특히 청와대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발탁하는 책임을 맡은 분들, 백화점이든 재래시장이든 찾아가서 주부들의 장보기를 유심히 관찰하길 권유하고 싶다. 주부들은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 사면서도 들었다 놨다 하기를 거듭한다. 하물며 국가의 요직에 앉힐 인재를 고르는 데 있어서랴. 여러분 각자의 가정사라면 이번처럼 허술하게 처리했겠습니까? 절대 안 그랬겠지요?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