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정식] 어느 철학자의 서거 기사의 사진

지난 5월2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및 노제로 인해 온 나라가 충격에 잠겨있을 때 한국 철학계는 큰 별을 잃었다.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과 한국 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던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서거한 것이다. 그의 별세는 워낙 떠들썩했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유난히 고요와 정적 속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그와의 이별을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철학자로서, 그리고 윤리운동가와 수필가로서 이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그가 남긴 발자국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년에 다가오는 죽음을 실감한 듯 여러 곳에서 "삶의 덧없음"을 토로하곤 하였다. 한 에세이에서 그는 "삶과 죽음이 바로 이웃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었던 탓으로 앞을 다투며 짧은 시간을 길게 보낸 나날이 어리석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큰 족적 남긴 김태길 교수

김태길 교수는 최근에 스피노자의 사상을 자주 언급하기도 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이 하나뿐인 대자연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며, 이 점에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다시금 진리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말을 이렇게 요약한다. "한 사람을 독립된 단위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나뭇잎 하나를 독립된 단위로 볼 수 있는 그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나뭇잎의 '나'가 나무의 줄기와 가지, 그리고 뿌리에까지 뻗어갈 이유를 가졌다면 사람의 '나'도 대자연의 끝까지 확대될 이유를 가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김 교수는 '나'의 경계선을 여섯 자 미만의 공간 속에 국한하고 그 국한된 부분을 마치 하나의 독립된 실체처럼 생각하는 그릇된 관념은 인생이 경험하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가르쳤다. 불행이란 결국 슬픔, 두려움, 노여움 같은 괴로운 정서들의 함수이며, 이러한 정서를 빚어내는 첫째 요인은 전체의 진상을 모르고, 그것을 전체로 오인하여 부분의 보존에만 애착하는 이기심임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러한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더구나 그것을 가슴으로 따르지 못함을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김 교수는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 기회주의와 이기주의, 배금주의 등이 이 땅에 만연하는 현상을 직시하고 무엇보다 양심과 도덕성 회복이 급선무임을 절감하였다. 늦게나마 그는 도미 유학하여 스피노자를 비롯한 서양 윤리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다음 최근까지 후학을 양성하며 적극적으로 도덕운동을 전개해온 대표적인 이 땅의 지식인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가 결코 강한 주장을 내세우거나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항상 신중하게 말하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학처럼 조용하게 살다 갑자기 훌쩍 날아간 진정한 의미의 선비였다. 그가 전개했던 도덕운동 단체인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에서도 항상 강조한 강령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먼저 실천하기'였다.

강남의 번화가에서 노구를 이끌고 묵묵히 쓰레기를 줍던 그의 모습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썩지 않는 비닐 제품이 좋은 물건이 아니듯 인생도 그저 오래만 사는 것이 좋은 삶은 아니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가르침들 실천했으면

우리는 이제 김태길 교수가 도달한 지점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그의 가르침을 솔선수범하여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손가락끼리 서로 다투는 것처럼 가족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불화를 키워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식이 먼저 갖추어져야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 교수가 말하는 이른바 '대아(大我)의 철학'은 매우 깊고 넓은, 그리고 멀리 울려퍼지는 가르침이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하지만 그 어떤 사람의 열띤 웅변이나 격렬한 행동보다 더 오래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엄정식(서강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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