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국민의 뜻이라고?… 여론은 선전에 조종된다 기사의 사진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노엄 촘스키)

아무리 민주사회라고 해도 여론이나 정치 메커니즘이 순전히 ‘국민의 뜻’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는다면 잘해야 반은 맞고 반을 틀리는 신념일 것이다. 촛불군중이나 집단지성의 힘이 온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증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론이 정치에 미치는 힘만큼 정치가 여론을 조종하는 힘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여기 이 두 저서는 훈련받은 전문가들과 권력에 의해 여론이 좌지우지되는 불편한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대중의 관행·의견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중요한 요소"

프로파간다/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강미경 옮김/공존/1만5000원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을 담은 이 분야의 대표적 고전인데 이번에 국내 첫 완역됐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친조카인 저자는 1928년 출간한 이 책에서 이미 이렇게 선언했다. "성실하고 유능한 정치인은 선전이라는 도구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주조할 수 있다."



이 노골적인 자신감을 담은 책을 나치의 히틀러와 괴벨스가 탐독하고 감탄했다(히틀러는 버네이스에게 PR기술 자문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파시즘과는 대척점에 있는 급진 진보진영의 노엄 촘스키조차 97년 이 책을 "홍보 산업의 실질적 매뉴얼"이라고 극찬했다.

버네이스는 미 정부 최초의 선전 기관인 '연방공보위원회'에서 활약하다 그만둔 뒤 이 책을 썼다. 그의 패러다임을 요약하면 "선전가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대중은 정확히 선전가의 의도대로 따른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버네이스는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민심이 천심이라는 신조는 선출된 사람들을 유권자의 눈치나 보는 하인으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조롱했다.

선전 전략가로서 버네이스는 독보적이었다. 그는 쿨리지 대통령의 까다롭고 차가운 이미지를 극적으로 바꿔 재선에 당선시켰다. 담배 회사의 홍보를 의뢰받고 여성 흡연율을 몇 배로 높이는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스크린 속 인기 배우와 거리의 늘씬한 모델들 입에 담배를 물려 여성 흡연을 '자유의 횃불'로 상징 조작한 결과였다.

“더 거칠게 다루어라, 민주주의는 네거티브에 목마르다”

네거티브 전쟁/데이비드 마크 지음·양원보 박찬현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1만9000원

버네이스는 이후 무수한 '프로파간다의 후예들'을 탄생시켰다. 그중 한 명일 미국의 베테랑 정치 평론가 데이비드 마크는 이 신간에 이르러 "더 거칠게 다루어라. 민주주의는 네거티브에 목마르다"고 외친다. 그는 미국 선거사에 등장했던 다양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소개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비방과 폭로 위주의 네거티브 선전은 정말 민주정치의 장애물일까?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민주당 후보 측은 공화당 후보가 낙태를 "일종의 살인"이라고 언급했던 옛 케이블 방송 출연 장면을 찾아내 광고로 내보냈다. 그리고 "낙태를 살인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인제 와서 임신중절 합법화를 입에 담고 있습니다. 과연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공격했다. 해당 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한 세금감면 단체는 대선 주자인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큰정부주의자인데다 볼보를 운전하고 할리우드를 사랑하며 보디 피어싱을 하는 자"라고 광고를 통해 비난했다. 기만적인 진보 엘리트라는 뜻이다. 이런 종류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건전한 여론 형성의 독소인가. 어떤 유권자에게는 비열한 꼼수일지 모르지만 다른 유권자에게는 후보 선택을 위한 중요한 정보로 작동한다면? 우리에게는 16·17대 총선 때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이 이 문제에 대한 판단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80여 년 전 버네이스의 자신감은 현대로 올수록 더욱 유효해지는 탁견인지도 모른다. "민심은 국민의 생각을 표현하며, 국민의 생각은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여론 조작에 능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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