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말바로글바로

[말바로 글바로] 장세동과 천성관


"증인은 유독 정치자금법만 모릅니까." "일반적인 건 알지만 세부적으로는." "지금까지 정치자금법도 모르는 안기부장에게 이 나라의 안전을 맡겼습니까." "인신공격은 하지 마시고."

1988년 일해재단 청문회 때 노무현 의원과 장세동 증인이 질의하고 답변하는 내용이다. 매서운 질문과 강한 소신이 격돌하는 한판 기싸움이었다.

하지만 이 대목은 문답법의 기본 형식에서 벗어났다. 질문을 한 뒤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챈 것이다. 우리의 청문회 문화, 논쟁 문화가 대개 이런 식이다.

그래도 그날은 둘 다 승리한 셈이다. 한 사람은 이런 사소한 문제에 아랑곳없이 청문회 스타 입지를 굳혔고, 다른 사람은 욕된 자리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에 나선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모습은 장세동씨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검찰을 대표하는 인물이 답변하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웠다. 듣기에 따라서는 '교회'도 될 수 있고 '교외'도 될 수 있는 어정쩡한 발음을 했다가, 다시 확인하는 질의에 할 수 없이 '작은 교외'라는 해괴한 단어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행위의 정당성을 잃으면 아무리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입이 군색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청문회를 보고 나서 꽤 실망했나 보다. 기자회견을 통해 한마디 했는데, 받아 적는 사람들이 조사 하나를 달리 썼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천 후보자 내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이고, 또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천 후보자 내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이다. 어느 게 옳은 표현일까. 둘 다 옳다.

전자는 '대통령에게∼요구하다'의 흐름이고, 후자는 '대통령이∼철회하다'의 흐름이다. 다만 후자는 권할 만한 표현이 아니다. 자칫 '대통령이∼요구하다'로 읽힐 수도 있다. 후자처럼 쓰려면 '나는'이나 '우리는'이라는 전체주어를 하나 더 넣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어가 두 개이고, 그에 맞는 술어도 두 개라서 각각의 호응 관계가 잘 이루어진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