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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정수익] 감투를 경계하며

[삶의 향기―정수익] 감투를 경계하며 기사의 사진

초등학교 4학년 때 난생 처음 반장이 됐다. 숫기 없고 소심한 애제자에게 반장 자리를 맡겨 성격을 바꿔주려는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배려였다.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로 인해 제대로 학급을 통솔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선생님은 여러 방법으로 반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반장 자리의 위력을 알아갔고, 나중엔 그 자리를 권력의 도구로 삼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교실을 비울라치면 먼지털이를 들고 설치면서 폭군 행세를 하곤 했다.

워낙 철부지 때의 일이지만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원체 어리석은 인간은 그와 유사한 일을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서 또 다시 되풀이했다.

군복무 시절이었다. 고참들에게 시달리는 게 일상화돼 있던 신참 때, '내가 고참이 되면 졸병들을 못살게 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웬걸, 막상 고참이 되고 나자 불과 얼마 전에 했던 다짐을 기억에서 싹 지웠다. 졸병들의 인격이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주역이 됐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어떤 직책이나 직급이 주어지면 거기에 걸맞은 사람으로 바뀐다는 말이리라. 다소 어수룩하고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이라도 자리가 주어지면 그에 맞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 이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시답잖은 이에게 어떤 자리를 주면 무슨 감투라도 쓴 양 '오버'를 한다는 뜻이다. 이때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망친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앞에서 밝힌 창피한 추억 두 토막도 그런 경우다.

감투는 갓 아래에 받쳐 쓰던 모자의 일종이다. 옛날 한국 남자들은 아주 천한 사람들 외에는 어른이 되면 모두 상투를 틀고 그 위에 이 감투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이 감투의 모양에 따라서 벼슬아치들의 서열도 표시됐다. 만약 요즘 사람들한테 다시 그렇게 하자고 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누가 그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걸 쓰고 다니려 하겠는가. 그런데 아직도 그 감투를 벗지 못한 사람이 더러 있다. 어떤 자리가 주어지면 그걸 감투로 삼고서 앞뒤 좌우도 분별치 못하는, '감투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설마 하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감투의식을 가진 이들이 세상 곳곳에서 활보하고 있다. 학교나 군대뿐 아니라 회사, 단체, 관청 등 사람 사는 곳이면 거의 다 있다. 특히 공직이나 여의도 선량들 집단에서는 감투 쓴 이들로 넘쳐난다. 그것도 온갖 색깔과 모양으로 치장까지 한 감투를 쓰고 날뛰는 이들의 행태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 국민들에게 막심한 피해까지 끼치고 있다. 최근 검찰총장에 내정됐던 인사가 중간에 낙마한 사건 또한 감투 때문이 아닌가.

감투가 사람을 패망의 길로 빠뜨린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감투는 옳은 판단을 가로막는다. 감투 주변에는 항상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과 달콤한 검은색 유혹들이 어슬렁거린다. 감투를 쓰면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다. 바로 그 순간부터 감투쓴 사람은 파멸로 치닫는다. '완장'이란 소설 속의 임종술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감투의 매력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섬김의 도'를 배운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에서 차원 높은 리더십을 배운다. 감투의식과는 차원이 다른 섬김의식을 본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문득 성경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정수익 종교부장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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