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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문일] 공소시효 폐지


2000년 12월 30일 밤 일본 도쿄 세타가야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회사원 일가족 4명이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범행 후 10시간 이상 집안에 머물며 컴퓨터를 만지고 아이스크림을 먹기까지 하며 많은 지문과 혈흔, 유류품을 남겼다. 그럼에도 수사는 원점만 맴돌았고 시간은 공소시효인 2015년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는 중이다.

보다 못한 피해자 유족을 중심으로 올해 2월 '살인사건피해자유족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먼저 조직된 '전국범죄피해자회'와 함께 국민 4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흉악범죄의 시효폐지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법무성은 내부 검토 끝에 17일 살인죄의 시효를 폐지하고 중대 사건들의 시효는 연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미 시효가 성립한 범죄에 대해서도 소급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국민의 의식 속에 생명을 빼앗는 사건은 다른 범죄와 질적으로 다르므로 특별히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정의 관념이 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소시효는 일정 기간이 경과한 범죄사건에 대해 국가의 형벌권을 소멸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도 시효를 인정한다. 시효제도가 모든 나라에 다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계획적 살인에 적용되는 1급살인죄에 시효가 없다. 성범죄의 경우 현장에 남아있는 범인 DNA에 인격권을 부여해 'DNA기소'를 할 수 있고 이때 시효가 정지된다. 일부 주에서는 시효가 된 살인사건도 증거나 범인의 자백이 있을 경우 시효를 해제한다.

영국과 독일도 계획살인에는 시효가 없거나 정지시킨다. 프랑스에서는 수사종료 10년 후 시효가 성립한다. 일본은 프랑스법에서 시효제도를 따왔고,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나라는 일본법 영향을 받았다.

시효제도의 논거로서 시간이 경과하면 유족의 감정이 엷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범인에 대한 원망이 엷어지기는커녕 슬픔과 괴로움이 계속된다고 말한다. 시간 경과에 따라 증거물 보존이 어려워진다는 현실론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DNA 감정기술의 발달로 시간 경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수사가 가능해졌다. 우리도 일제의 잔재인 시효제도를 폐지할 때가 됐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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