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박제가 된 천재 백남준 기사의 사진

경부고속도로 수원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신갈오거리에서 민속촌 방향으로 10분쯤 들어가면 직방형 반사유리건물이 나타난다. 남준백 아트센터.

"예술은 사기"라는 발칙한 선언으로 지구촌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백남준의 작품 세계와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작년에 설립된 문화공간이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본인의 조악한 글씨조차 정겹다.

이 곳에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가든' 'TV왕관' 'TV 닉슨' 'TV물고기' '코끼리 마차' '로봇K-456' 등 진품 67점과, 비디오 아카이브 2285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두 번째 기획전인 '신화의 전시-전자 테크놀로지전(展)'도 함께 열리고 있다. 아트센터 측은 1963년 3월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개최된 백남준의 첫 개인전을 재해석, 재창조하려는 의도에서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식민지 조선 경성에서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홍콩∼도쿄∼뮌헨∼도쿄 등을 종횡무진했고, 30대 후반 이후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비디오에 몰두한 백남준. 특히 1984년 벽두, 억압과 감시 주체가 아닌 갖고 노는 도구로서의 비디오 카메라의 존재를 강조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지구촌 TV시청자들에게 선보여 일약 세계적 인물로 떠오른 후 그는 '비디오아트 창시자'라는 애칭으로 불리게된다.

“통섭적 노마드의 존재도 잊혀지고, 그를 위한 인프라마저 취약한 현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아티스트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통섭(統攝)적 노마드'다. 소시적 피아니스트 교육을 받은 그는, 도쿄대 문과부에선 미학과 미술사 및 음악사를 공부했다. 뮌헨대에서 다시 음악사를 공부했고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등과 교류하면서 전자예술로 방향을 틀었다. 샬롯 무어만 등과는 플럭서스를 섭렵한다.

일련의 'TV 시리즈'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천문물리학적 이해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며, '로봇K-456'(1961년 작)은 독일어 전자회로 서적을 독파해 제작한 것으로 원시적이긴 하지만 로봇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열리고 있는 기획전에 재현된 '도살된 소머리'는 서양의 오만함에 대한 철학적 비아냥의 징표다.

뉴욕타임스에 색연필로 쓴 '태내 자서전'은 그의 천재성을 재확인시킨 작품이다. 태어나기 110일 전인 1932년 만우절부터 생일까지 '태어남의 부조리'와 '자신이 태어나야 하는 이유' 등을 심각하면서도 익살스럽게 설파하고 있다. 그는 미술가이자 음악가였고, 전자공학도이자 철학가였다.

그런 그가 잊혀지고 있다. 결정적인 것은 서양 평단의 '백남준 고사작전'이다. 그들은 백남준이 활약했던 분야에서 인용하는 것조차 인색할 정도로 지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평단 역시 그를 아티스트로만 묶어두고 있다.

인프라도 문제다. 경기도가 설립한 아트센터의 운영예산은 연 50억원 내외. 그 중 작품 구입 예산은 10억원에 불과하다. 점당 평균 5억원인 백남준 작품을 보강하는 데 턱없이 모자란다. 상속받은 조카의 선처가 필요하지만, 이렇다 할 응답이 없다.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 또한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6년 작고하지 않았다면 어제로 희수(喜壽)를 맞았을 백남준. 아트센터에선 조촐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러고 보니 20일은 백남준이 '가장 오래된 TV'라 칭한 달에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이 인류 최초로 발을 디딘 날이기도 하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가! '송 이상(頌 李箱)'이란 시를 헌사할 정도로 이상에게 존경의 염을 지녔던 백남준. '대한민국이 낳은 통섭적 천재'가 박제화되어가는 현실이 아리다.

윤재석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