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 간 8개월여의 지루한 정치 소모전이 22일 한나라당의 법안 강행처리로 종결됐다. 제헌 이후 현재 18대 국회까지 여야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의안들 가운데 상당수는 민주주의 원칙이 무시된 채 다수당에 의해 '변칙처리'돼 왔다. 국회 의안 변칙처리 원조는 1952년 전쟁 중 부산 임시 수도 국회에서 군대가 의사당을 포위한 채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한 발췌 개헌안을 표결 처리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후 집권당이 회의장을 변경해 순식간에 날치기를 하거나 의장이 의석을 이탈해 사회를 보는 등 볼썽사납게 발전했다.

변칙처리 수법도 가지가지

지난 2002년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 거대 야당이던 한나라당 주도로 개정된 국회법은 110조와 113조에서 국회의장이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법안의 표결선언과 결과선언을 해야만 효력이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권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변칙처리의 고전인 '날치기'가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이후 여야는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기 위해 쟁점법안 처리 때마다 거친 몸싸움을 해야 했다. 지난 22일 본회의장 안팎에서 벌인 여야 의원들 간의 몸싸움도 본회의장 의장석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계기로 '국회 의안 변칙 처리사'를 짚어보자.

집권 공화당은 65년에 월남파병동의안,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69년 3선 개헌안, 79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총재 제명안 등을 회의장을 봉쇄하거나 야당을 따돌리고 회의장을 옮기는 등의 방법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민정당 집권기인 85년 12대 총선 이후 국회에서의 날치기는 꽤 자주 있는 일이 되었다. 그해 12월 새해 예산안에 반대하는 신민당이 본회의장을 밤새 점거하자 민정당은 의원총회를 하겠다며 새벽 국회 146호실에서 민정당 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최영철 국회 부의장의 주도로 날치기를 했다. 이세기 원내총무와 김종호 예결위원장이 뒤늦게 회의장에 들어간 성난 야당의원들로부터 크게 모욕을 당했다.

86년에는 국시발언 주역인 신민당 유성환 의원 구속동의안처리를 놓고 여야가 격돌했다. 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민정당은 경위와 경찰을 동원, 국회 로텐더 홀을 가로막은 채 보도진 몇 명만을 대동하고 예결위 회의장 뒷문을 통해 기습적으로 들어가 구속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때까지 집권당들은 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극렬하게 의안처리를 방해할 경우 회의장을 기습적으로 옮겨 1∼2분 만에 번개처럼 의안을 처리하는 이른바 '날치기'를 했다.

민정·통일민주·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 시절에는 날치기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매우 부정적이 되자 본회의장 내에서 처리하되 국회의장이나 혹은 사회권을 넘겨받은 부의장이 의장석을 벗어나 통로 등에서 사회를 보는 '본회의장내 변칙처리'가 유행했다. 90년 7월15일 오전 10시30분 박준규 의장이 본회의장 의장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평민당 의원들이 몸으로 막는 사이 김재광 부의장이 회의장 중간 통로에서 민자당 의원들의 호위 속에 26개 의안을 기습 처리했다. 94년 12월3일 저녁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황낙주 국회의장을 의장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막는 사이 이춘구 부의장이 본회의장 2층 지방기자실에 올라가 무선 마이크로 개의선언과 함께 47개 의안을 전격 처리했다.

96년 12월26일 민자당에서 개명한 집권 신한국당은 야당인 국민회의가 노동법 개정을 극력 반대하자 야당의원들이 잠든 새벽에 소속의원들을 불러내 단독 처리했다. 이를 계기로 김영삼 정권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정권교체로 집권당이 된 김대중 대통령 주도의 국민회의도 여당이 되자 똑같이 '변칙 처리'를 시도했다. 99년 1월 야당인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해 농성을 하자 장영달 국민회의 원내 부총무 주도로 여당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진입, 한나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하는 사이 김봉호 부의장은 의석 중간에서 여당의원들의 호위 속에 무선마이크와 의사봉을 꺼내 들고 3분 만에 경제청문회 개최안 등 4개 안건을 기습처리했다. 집권 국민회의는 야당시절 배웠던 여당의 '변칙 처리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삼류 정치’ 세계 웃음거리

이번 미디어법의 강행처리는 우리 정치가 여전히 삼류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해 세계 언론의 웃음거리가 되더니 이번 미디어법 강행처리가 세계 언론에 보도되며 또 한번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F학점의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비 민주적 행태로 대한민국은 세계언론에 도매금으로 모욕을 당해야 했다. 미디어 관계법의 강행처리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하나의 오점으로 엄정히 기록될 것이다.

ry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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