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故 백화종칼럼

[백화종 칼럼] 딱하다,집권 한나라당이여!

[백화종 칼럼] 딱하다,집권 한나라당이여! 기사의 사진

1971년 10월2일, 국회는 야당인 신민당이 제출한 김학렬 기획원, 신직수 법무,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건의안을 표결했다. 공화당 총재 박정희 대통령은 당에 부결을 지시했다. 공화당은 재적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었다. 표결 결과 두 건은 부결됐으나 오 내무 해임안은 총 투표 203표 중 찬성107표로 가결됐다. 공화당에서 최소 20표가 이탈했다는 계산이 나왔다. 공화당 실세였던 백남억 당의장, 김성곤 중앙위의장, 김진만 재정위원장, 길재호 정책위의장 등 이른바 4인방이 맘에 안 드는 오 장관을 거세하기로 모의한 결과였다. 4인방과 동조 의원들은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김성곤씨는 카이저 수염까지 뽑히고 정계를 떠났다. 중심을 못 잡고 헤맨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떠오른 '10·2 항명 파동'의 단상이다.

누구 한 마디에 바뀌는 당론

여야가 미디어법의 국회의장 직권 상정 문제로 첨예하게 대치하던 지난 19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직권 상정할 경우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권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공화당 정권 시절이었다면 항명파동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곤욕을 치른 건 박 전 대표가 아니라 여권이었다. 박 전 대표는 살아있는 권력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대신, 뒤통수를 맞은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의 중재안을 반영하여 수정안을 만드는 등 그의 심기를 달래느라 안절부절못했다.

이처럼 집권당에서도 당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자유가 허용되는 건 철권 통치자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민주화 투쟁'으로 세상이 좋아진 덕이 아닐까. 세상이 이 정도로 바뀐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문제는 집권당이 특정인의 한마디에 중요 당 방침을 진지한 토론도 없이 바꾸는 등 허둥댔다는 점이다. 당이 미래의 권력이라는 박 전 대표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허술하게 방침을 정했는지, 당의 방침이 정해졌는데 박 전 대표가 뒤늦게 딴죽을 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되 그 어느 쪽이라도 집권당다운 모습은 아니다.

특히 미디어법의 당·부당을 떠나, 그 표결 과정을 보면 한나라당의 집권 능력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물리적 저지 속에 강행 처리라는 전쟁을 치르기로 한 사람들이 의결 정족수 미달 상황에서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가 재투표를 함으로써 가결의 효력 시비를 낳았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오합지졸들도 그 정도로 전략과 준비 없이 전쟁에 임하진 않는다.

대리투표, 법 이전의 문제

또 국민의 대표로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대리투표로 충분히 의심될 만한 행위들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만일 대리 투표가 확인될 경우 이는 국민적 수치로서 한나라당은 법적 심판에 앞서 당연히 당 차원의 사과와 당사자 문책을 비롯하여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민주당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면 동일한 조치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은 여야의 대치 상황에서 법안의 중요 조항을 몇 사람이 급히 주물러 국민은 물론 절대 다수의 여당 의원들에게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직권 상정했다는 것이다. 여야 간 최대 쟁점이 돼 9개월씩 국정의 발목을 잡을 만큼 국민적 관심이 쏠린 법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순 없는 일이다.

정부 여당은 당정 개편과 민생 챙기기 등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물론 정국이 이 문제에 묶여 언제까지나 파행하고 국정이 헛돌아서도 안 된다. 다만 미디어법 파문이 개운하게 수습되지 않을 경우 그 후유증이 심화되고 장기화될까 걱정이다.

이번 사태는 1차적으로 미디어법을 6월 국회에서 표결 처리키로 합의해 놓고 그 합의를 파기한 민주당이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 후 한나라당이 미숙한 대응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야당의 원인 제공과 여당의 미숙한 대응으로 야기된 정국의 혼란이지만 그 수습 책임은 1차적으로 정권을 가진 여권에 있다. 정부 여당은 다시 한번 집권 능력을 검증받게 된 것이다.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