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진영] 백용호 국세청장의 숙제 기사의 사진

지난 6월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세청장으로 내정됐을 때 국세청 공무원들은 크게 당혹했다. 세정 경험이 전무한 외부 인사의 국세청 입성을 마치 점령군의 진입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취임 10여일이 지난 요즘 백 청장에 대한 국세청 사람들의 평가는 달라졌다. 대부분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인 실세 청장'이라고 그를 평가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들의 시각이 왜 이렇게 갑자기 바뀌었을까. 이유는 백 청장이 자신들과 생각이 비슷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 청장을 '외부 인사'가 아닌 '우리 식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직원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기에 백 청장을 보는 시각은 오히려 걱정스럽다. 그가 국세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직 논리에 쉽게 매몰되지는 않을까 해서다. 청장의 잇단 비리로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온 국세청이 수장이 바뀌어도 변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국세청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청와대 국세행정선진화 태스크포스가 1년여 검토해 온 외부 감독위원회 설치를 반대하고 대신 내부에 국세행정위원회를 설치하겠다거나, 지방청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세정개혁방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등 최근 백 청장의 언행은 평소 국세청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이를 두고 다른 경제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역시 국세청'이란 말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국세청 관료들의 집요한 설득이 백 청장에게 먹혔다는 설명이다.

물론 외부에서 주장하는 쇄신과 개혁이 '절대선'은 아니다. 그러나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청장이 기존 국세청 직원들과 100% 같은 조직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최소한 얼마간은 지켜보면서 국세청의 문제점이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세청은 어느 정부 부처보다 결집력이 강한 조직이다.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애정은 연인 간의 사랑보다도 더 뭉클하고 진하다. 그래서 조직을 흔든다고 생각하면 일치단결해 보위에 나선다. 청장으로서 조직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이 같은 특성 등을 지닌 국세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과외공부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들 못지않게 외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정부와 여당, 청와대 사람들보다는 전직 국세청 관료 , 학자, 시민단체 및 언론계 인사와의 교류를 늘려야 한다. 구내식당에서 조용히 홀로 점심을 먹을 일이 아니다. 나가서 국세청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부지런히 만나야 한다. 안에서는 나무를 볼 수는 있지만, 숲을 보기는 어렵다.

백 청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재임 1년2개월여 동안 많은 업적을 이뤘다. 특히 조직관리와 업무추진 능력 등에서 공정위 직원들의 점수가 후했다. 위원장으로는 처음으로 내부 직원들이 참여하는 '자랑스러운 공정인' 평가에서 종합 3위에 뽑히기도 했다.

국세청에서도 소임을 잘 수행해 후일 '괜찮은 청장'으로 기억되기를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세청 바로알기'란 자신 앞에 주어진 숙제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세청이 그가 구상하는 대로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지니는 조직' '작지만 효율적인 집단'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진영 편집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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