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권위 있는 국책연구기관' '최고의 싱크탱크'.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지칭하는 말이다. KDI는 중요한 곳이다. 주기적으로 경제 전망을 내놓는 것 외에도 주요 정책에 대한 연구용역을 수행한다. 하지만 KDI에 대한 세간의 시각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연구보고서를 정부 입맛에 맞게 주문 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연초에도 경인운하 경제성 분석에서 사업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비용 대 편익 비율을 자의적으로 산출했다는 비난을 받는 등 여전히 '정부의 시녀'라는 눈총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 관련 정책의 경우 그 추진 여부는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수치로 나타난다. 즉 연구조사 결과 도출된 수치는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그렇게 중요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에 데이터 하나만 잘못 입력하면 엉뚱한 결과가 나와버린다.

최근 논란이 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고서 조작 사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KISDI는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2만1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2006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1조3000억달러로 입력했다. 이는 1인당 소득이 2만6000달러라는 얘기다.

KISDI는 이를 근거로 우리 경제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을 0.68%라고 계산했다. 9000억달러에 못미치는 실제 GDP를 입력하면 0.98%로 이미 포화상태인데 성장잠재력이 큰 것처럼 보고서를 낸 것이다. KISDI는 조작이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까지 사과한 마당에 그 같은 변명은 구차해 보인다. 미디어법의 당위성 여부를 떠나 국책연구원이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최근 박사급 연구위원들이 노조를 결성키로 한 노동연구원의 경우를 보자. 노조 결성을 주도한 황덕순 박사는 박기성 원장이 특정 주제에 대해 연구방향을 지시하는가 하면 노동유연화를 주장하는 외부 연구자의 글을 마치 노동연이 작성한 것처럼 청와대에 보고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 정책이 결정되기까지는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책이 결정되면 국책연구기관 연구자는 다른 곳과 달리 자제하는 것이 기본자세"라며 "상황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그에 맞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다음번에 다시 진보정권으로 바뀌면 노동연은 그 정권의 입맛에 맞춰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겠다는 얘기다. 독자 여러분은 이 같은 행태가 옳다고 동의하시는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정부의 진심을 몰라주고 반대하는 국민이 답답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편법으로 국민을 속여 국면을 넘기면 불신만 사서 정책 추진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국민은 정부가 못 미더우면 해답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

재야 고수로 불리는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말 한 경제신문은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를 선정하면서 김광수경제연구소를 19위에 올려놓았단다.

김광수 소장은 지난 3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소에 쏠리는 관심을 "대중이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가 엉터리라는 걸 간파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대중의 열광도 "제도권 정보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4일에는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초대 소장으로 한 경제개혁연구소가 창립총회를 가졌다.

김 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정치,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연구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부나 대기업의 출연 연구소가 많고, 연구 역량도 뛰어나지만 정부나 재벌 입김으로부터 독립된 연구소가 드물다는 얘기다.

신뢰는 남이 주는 것이지 자신이 주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연구원이 10명도 안된다. 국책연구기관들은 그런 연구소에 신뢰를 빼앗기고 나서 "왜 그런곳을 믿느냐"며 국민을 탓할 것인가.

변재운 대기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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