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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백(詩仙 李白), 시성 두보(詩聖 杜甫). 한자문화권에서 두 사람이 쌓은 금자탑(金字塔)에 시비를 달기는 어렵다. 금기를 처음 깨뜨린 인물은 아마도 청나라 조익(趙翼·1727∼1814)일 것이다. 그는 이·두의 시가 이제는 신선하지 않으며,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천재가 나타나는 법이라고 했다(논시·論詩). 그후 사람들은 파격의 인물이 출현할 때 조익의 시구 '강산대유재인출(江山代有才人出)'을 읊었다.

조익은 기개와 재능에 비해 세속적 성공을 하지 못했다. 1761년 과거에서 성적으로는 장원이었지만 황제의 특명으로 재해 지역 출신 합격자에게 영광을 넘겨야 했다. 그후 변경의 지방관을 편력하다가 곧 관료로서의 입신을 단념하고 학문과 저술에 전념했다. 조익은 시로도 당대에 손꼽혔는데 중국 역사에서 시와 학문에 모두 능한 이는 매우 드믈다.

조익이 공들여 지은 '이십이사차기(二十二史뺇記)'의 일부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사기(史記)'에서 '명사(明史)'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를 고증하고, 읽은 소회를 기록한 책이다. '차기'란 요즘말로 독서 노트다. 완역이 아니라 전체의 반 정도 번역이지만 서울대 박한제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12년 동안 매달렸다고 한다. 이 책이 조선 사회에서 얼마나 읽혔는가는 연구된 바 없는 것같다.

'강일(剛日)에는 경전을 읽고, 유일(柔日)에는 사서를 읽는다'는 옛사람들의 독서법이 있다. 경전과 같이 딱딱하고 원칙을 따지는 책을 하루 보았으면 하루는 역사에서 융통과 변화로 가득 찬 인간세계 실상에 대해서도 이해를 넓혀야 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강일은 언제고, 유일은 언제인지 굳이 따질 것 없다. 맑은 날은 강일,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은 유일로 삼아도 좋겠다.

조익은 후세 사람들이 고전을 읽는 모양을 광장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연극을 보는 일에 비유했다. 키 작은 사람은 발꿈치를 들고 고개를 뻗어 무대 위를 올려다보고, 높은 누대에 있는 사람은 무대를 내려다본다. 두 사람이 본 연극은 같지만 감상은 다르다. 키 작은 사람이 연극을 자세하게 설명할 때 누대에서 본 사람은 코웃음 친다(한거독서·閑居讀書).

냉온을 손쉽게 조절하게 된 뒤로 독서의 계절이 따로 없다. 올 여름휴가는 독서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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