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동수] 김민우와 입학사정관제 기사의 사진

“역경 극복 경험이 있는 학생을 우대해야 더 많은 ‘김민우’가 나올 수 있다”

힘든 시기일수록 대중은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일군 사람들의 스토리에 주목한다. 타인의 역경 극복기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난관을 헤쳐갈 새로운 힘과 동기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한때 가수였던 김민우씨도 대중에게 그런 힘과 동기를 부여하는 인물이다.



지난 월요일 아침 한 방송 프로에 나온 김씨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감동적으로 털어놨다. 그는 20년 전 최고의 인기 가수였다. 1999년 봄 '입영열차 안에서' '사랑일뿐야'란 노래로 혜성처럼 등장한 뒤 '가요 톱10'에서 두 곡 연달아 5주씩 10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무명의 신인이 단숨에 인기 스타로 도약한 것이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 그는 홀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군복무를 마친 뒤 연예계로 돌아온 그는 2집과 3집을 잇따라 내며 부활을 꿈꿨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무덤덤한 반응. 팬들은 더이상 그에게 열광하지 않았다. 가요계의 트렌드는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과 함께 이미 발라드에서 댄스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김씨는 직감했다고 한다. 그의 시대가 지나가버렸음을. 그후 생계를 위해 밤무대 가수로 전국을 전전하던 나날들.

음악에의 열정과 사랑만은 버릴 수 없던 그에게 또 악재가 터졌다. 재기를 꿈꾸며 전 재산을 쏟아붓고 빚까지 얻어 만든 음악 작업실이 화재로 전소돼 버렸던 것. 남은 것은 거액의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딱지.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부모님과 함께 월세방으로 몰렸다. 더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벼랑 끝, 추락할 곳이 없는 밑바닥이었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 결심을 한다. 가수라는 화려했던 기억을 깨끗이 잊자. 그리고 무슨 일이든 해 나가자. 그러나 인기 가수였다는 과거를 지우는 것,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2004년 수입차 영업사원으로 변신한 그는 많은 난관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때마다 성실 근면 끈기로 밀고나갔다. 그는 지금 자동차 판매왕으로,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또 기업체 섭외 1순위 교육 강사로 놀랍게 성공했다.

그의 인생 역전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김씨의 말과 행동에선 삶의 광야를 통과해본 사람에게서만 우러나오는 진솔함과 겸손함이 배어나온다. "새로운 인생은 나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김씨에게 위기와 시련은 오히려 성장과 변신의 자양분이 됐다. 그는 이제 노래로서가 아니라 역경 극복의 한 아이콘으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엊그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학생들의 잠재력은 더욱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며 "학생들의 위기 극복 과정과 그에 대한 평가를 입학사정관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점수가 조금 부족해도 역경 극복 경험이 있는 학생을 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옳은 방향이다. 어느 인생에나 크고 작은 위기는 닥쳐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위기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하고 돌파해가는 능력이다.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학생은 그런 경험이 없는 학생보다 리더십과 타인에 대한 배려 의식이 풍부하다. 이는 책상 공부만으론 결코 갖출 수 없는 능력이다.

미래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단순히 머리만 좋은 사람이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 닥쳐오는 수많은 위기와 역경들을 잘 극복하면서 협동 정신과 이타심도 겸비한 인물이다. 우리 사회엔 가정해체나 경제적 빈곤 등 험악한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려는 청소년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들을 잘 가려내 제2, 제3의 '김민우'로 커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입학사정관제가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