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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잣집은 300년 동안 존경받는 부자였다. 부자 3대 가기도 힘들다는데…. 한 가문이 흥하는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최부자 집안에 대대로 이어진 가훈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두 가지를 보자.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기근이 극심하면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최부잣집은 절대 그런 논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의 논을 헐값에 넘겨 받는 건 가진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더욱이 땅을 판 사람의 원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잣집은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주변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쌀을 내서 도와주었다. 이처럼 선한 일을 많이 했으니 집안에 경사가 넘치는 건 당연한 이치. 둘 다 상생(相生)이 왜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요즘 대기업과 중소 상인은 어떤 사이로 봐야 할까. 상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죽기살기로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 그렇다. 쌍방간 갈등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반발하자 SSM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대기업과 중소 상인들 간 다툼은 서점 제과점 주유소 등 소비재산업 거의 모든 업종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소 상인들은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조정제도를 '무기'로 앞세운다. 사업조정 권한을 가진 중소기업청은 "SSM 외에 다른 유통 업종에서도 사업조정 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생이 뭔가. 음양오행설에서 나왔지만 '서로 조화를 이뤄 살아간다'는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쳐 보라.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 망하게 된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다.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어느 기업도 고독한 섬이 될 수 없다. 기업들은 공급사슬에 의해 효율적으로 상호 결합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중소 상인을 보호하면서 소비자 후생도 높이는 길을 찾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최부자의 지혜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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