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말의 성찬,風雨同舟를 보며 기사의 사진

쿵푸를 미국 전역에 보급하겠다는 야망을 지닌 홍콩 출신 중국 청년이 풍찬노숙, 각고 끝에 워싱턴주립대 철학과에 입학한다. 철학과에 걸맞은 이렇다 할 '스펙'도 갖추지 못한 그가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입학사정관인 철학과 교수가 그의 수월성을 인정했기 때문. 교수는 쿵푸를 음양오행으로 풀어내는 청년의 동양철학에 존경의 염을 표하면서 아예 강의를 맡기기도 한다.

한 지상파 방송이 월요일 새벽 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는 '이소룡 전기'의 한 대목이다.

지난달 27∼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흡사 동양철학 경연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려한 중국 고사성어가 회의장을 수놓은 것이다.

화려하게 테이프를 끊은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그는 전략경제대화 개막 연설에서 "산중에 난 좁은 길도 계속 다니면 곧 길이 되고, 다니지 않으면 곧 풀이 우거져 길이 막힌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는 맹자의 '진심(盡心)' 하편을 인용했다. 양국이 지속적으로 대화와 협력을 하자는 비유였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거들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는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양국이 굳건한 관계를 맺어 국제 현안을 함께 풀어가자는 비유였다.

“美·中 경제 공생이 자칫 지구촌 현안 도외시한 카르텔로 변질될까 걱정”

고사성어 성찬의 대미는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장식했다. 그는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함께 행동해 왔다. 이를 풍우동주(風雨同舟)라고 한다"고 중국말로 단합을 제의했다.

자칫 과해 보이는 미국 측 립 서비스에 중국 대표인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때 말한 것처럼) "Yes we can!"으로 호응했다.

전반적인 구도는 미국의 간절한 구애에 중국이 여유 있게 화답하는 형국이었다. 알다시피 이 구도는 최근 확고하게 올라선 중국의 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나라다. 지금도 8000억달러를 웃도는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월가가 자초한 경제위기 속에서 금고가 말라 쩔쩔매는 미국에게 중국은 그야말로 키다리아저씨 같은 존재다. 한편 중국은 미 달러화의 기축통화 자격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게 미국은 자국 제품을 가장 많이 사주는 '봉'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면 휘청거릴수록 난처한 건 중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제조업 1위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어제 내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의 대미 시장의존도는 훨씬 커질 것이다.

아무튼 미국과 중국은 이제 한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도 괴로운 샴쌍둥이같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기묘한 경제 공생관계를 '차이메리카(Chimerica)'로 표현한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순서배치 또한 절묘하다.

하지만 그런 구도를 바라봐야 하는 지구촌 입장에서 안심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이른바 G2로까지 불리는 미·중 경제카르텔이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지구촌 공통 현안을 도외시할 기미가 곳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구온난화 문제는 이산화탄소 전체배출량의 4분의 1을 내뿜는 미국이나,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모두에게 귀찮은 현안, 제쳐놓고 싶은 차안이다. 이미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양국은 이 문제를 얼렁뚱땅 넘겼다.

지구촌 빈곤에 대한 고민이나 시장 개방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를 애써 외면하는 것 또한 그런 우려를 증폭시키는 증좌다. 더욱 돈독해진 두 나라의 경제 공생관계, 이들이 지구적 담론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건 순진한 발상일까.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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