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말씀·삶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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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24

얼마 전 예전에 같이 사역하던 여전도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아직은 한참 더 일해야 할 나이인데 일찍 하늘나라에 가신 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빈소에 가서 문상하면서 유족과 모인 분들에게 성경 한 절을 읽고 권면했습니다. 그때 읽은 말씀이 사도행전 20장 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더 계시지 못하고 가셔서 안타깝고 슬프지만 전도사님이 사역하신 모습을 생각하면 이 장례식이 슬프거나 우울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읽은 말씀의 내용대로 생명을 걸고, 그러나 드러내거나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모든 것을 바친 분이니까 장례식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기쁨과 승리의 개선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도행전의 이 구절에 연관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자세한 상황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이 부분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이 구절의 내용이 깊이 다가오면서 마음에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내용 그대로 나는 생명보다 소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가?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있는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인용하지 않고 다른 구절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리더들에게 더 익숙합니다. 보통 어느 자리에 취임하거나 부임할 때 이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런 상황에 아주 잘 어울리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이 구절을 인용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내용 그대로 생명까지 바칠 결단이 없다면 인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하고 진리라는 것을 믿는다면 말씀을 상황에 맞게 갖다 쓰는 재료 정도로 봐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지역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이 구절을 말씀하면서 참으로 숙연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할 마지막 길이었으니까요.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목숨까지 잃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바울은 성령에 묶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시 '십자가'가 생각났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나대지 않고 광고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자신의 생명을 드리겠다는 순교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삽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의 실제적인 뜻은 ‘기록된 말씀 앞에서’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말씀 앞에서 진실하겠다고 다시 한 번 깊이 결심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역사는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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