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강교자] 감동이 그리운 시대 기사의 사진

밤새도록 끓는 물주전자 뚜껑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환자들을 돕고 싶었던 생각이 주전자 뚜껑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김을 빠지게 했다. 실용신안으로 출원된 이 아이디어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외아들의 병 치료를 위해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해야만 했던 요코하마의 한 여인 이야기도 있다. '우유를 마시기 위해 상반신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 만큼 허약해진 아들이 누워서 우유를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엄마의 눈에 수도꼭지에 끼워져 있는 주름 잡힌 호스가 다가왔다. '빨대에도 호스처럼 주름을 넣으면 쉽게 구부릴 수 있겠구나!'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결국 주름빨대를 만든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렇듯 성공을 부른 창의적 아이디어나 역사적으로 교훈을 남긴 사건들은 성공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보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 스토리는 언제나 큰 감동을 동반한다. 감동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힘이 된다. 인간은 감동을 받음으로써 정화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청률 47.1%를 기록하며 많은 시청자들에게 기쁨을 준 드라마가 있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주말 드라마 '찬란한 유산'이다. 재방송까지 동원해 드라마를 끝까지 섭렵한 시청자로서 느낀 점이 많다. '막장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모처럼 찾은 맑은 물줄기 같이 신선함을 준 이 드라마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감동을 주는 드라마'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동을 원하는 것이 어찌 드라마 분야뿐이겠는가?

'찬란한 유산'은 가족과 물질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준 드라마이면서 또한 '건강한 기업정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듯싶다. 직원 배려를 회사운영 기준의 최우선 순위에 둔 기업주와 '우리 회사'라는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들의 협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상호신뢰와 헌신의 노사관계, 그리고 끝까지 소통을 통해 직원들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노력은 끝없는 분쟁과 투쟁에 절망과 우려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흔히 강한 선전과 화려한 정보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감으로 느끼는 강한 자극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많은 정보에 휘말려 가슴으로 느끼는 뜨거운 감동을 잃고 살고 있다. 감동은 배터리와 같다. 억지로 밀려가고 끌려가는 걸음이 아니라 스스로 신나게 달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감동이다. 감동 없는 삶, 감동 잃은 사회의 고달픔과 냉랭함과 처절함은 모두를 병들게 한다.

위험에 처해 있는 두 여성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전직 미국 대통령의 특별기가 주는 감동은 그만큼 크다. '위인의 위대함은 작은 사람들을 다루는 모습에서 나타난다'는 토머스 칼라일의 말을 상기시킨다. 두 여성을 동반하고 평양을 떠나는 클린턴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위대해 보였고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이력서를 얼마나 찬란하게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주위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어떻게 변화되도록 했는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토머스 드롱 하버드대 교수의 말도 생각난다.

냉랭함은 모두를 병들게 할 뿐

'성공측정 방법을 바꿔라'에서 고통받는 약한 여성들의 삶을 구하기 위한 용기있는 결단이며 수고였기에 진정한 성공을 이루었고, 그 성공은 어려운 여성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었기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이런 감동을 그리워하고만 있을까? 우리는 왜 억류되어 있는 우리 가족들을 데려오지 못하는가? 고통 받고 있는 가족에 대한 배려의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찬란한 이력서 만들기에만 모두들 급급해서일까?

이런 감동의 바람이 평택에서는 왜 불지 못했을까? 참으로 슬프고 아프다. 그리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강교자(한국YWCA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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