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북한정권스럽기 기사의 사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사회주의 헌법 제103조에 따라 로동교화형을 받은 미국 기자 2명에게 특사를 실시하여 석방할 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명령을 내리시였다."

조선중앙통신이 5일 새벽에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톤의 조선방문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보도가 발표되었다"며 전한 내용의 한 대목이다. '위대한 령도자'의 힘, 참으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김 위원장의 명령이 곧 법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시인한 셈이다. 여기자 두 사람이 취재 욕심으로 몇 발짝 국경을 넘은 과오치고는 죄목과 형량이 너무 허풍스럽더니 풀어주는 방식 역시 헛바람으로 가득했다.

유치하지만 효과적인 방법

그게 김 위원장과 권력 승계(예정)자, 그리고 김씨 왕조체제의 위엄과 건재를 만천하에 과시하는 방법이라고 여겼음직하다. 여기자들을 체포했을 때 이미 '인도주의와 평화애호적인 정책'의 선전용 모델로 용도가 결정되었을 것이다. 12년의 '로동교화형'을 선고하고서도 교화소에 보내는 대신 초대소에 머물게 했을 뿐 아니라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한 한 것만으로도 그 속내는 짐작이 가고 남는다.

"클린톤 일행의 우리나라 방문은 조선과 미국 사이의 리해를 깊이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북측의 평가가 미-북 관계의 진전 및 북핵(北核)회담 재개의 가능성과 관련한 온갖 추측을 부채질한다. 반면 미국 정부는 일관되게 클린턴 방북 및 여기자 석방과 미국의 북핵 대응은 별개임을 강조하고 있다. 뒤로 어떤 교감이나 밀약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해 볼 수는 있겠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북한은 '전직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 김 위원장에게 사과토록 하고 그 값으로 은혜를 베푼 것으로 이미 기대 이상의 소득을 거뒀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관련해선 시간이 지나면 물꼬가 트이리라고 계산할 것이다. 바늘 귀 만큼이라도 구멍이 뚫리면 물길은 넓어지게 마련이라 여기면서.

시쳇말로 '유치찬란한' 방식이다. 그렇지만 터무니없는 오만, 막무가내의 무례, 무모한 치킨게임 중독증엔 아무리 미국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중국이라는 거대 세력이 뒤를 봐주고 있는 상황임에랴.

상대는 거들떠도 안 보는데

이럴 때마다 궁지에 몰리는 것이 남한 정부다. 왜 무대책, 회피로 일관하느냐는 질책이 일각에서이지만 따갑다. 어느 전직 통일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의사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남북기본합의서는 아주 잊어버렸다는 투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야 나쁘다 할 까닭이 없다. 문제는 우리가 미국이 아니고 남한이라는 점에 있다. 정치·군사·인권문제에 관한 한 거들떠보려고도 않는 상대에게 말 한마디라도 붙이려면 저들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은 늘 역사와 대면해야 한다. 일시적 불편이나 위태로움을 면하기 위해 정의를 부인하고 인권을 외면해서는 안 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북한 체제는 정의롭지 못하고 인도주의적이지도 평화애호적이지도 않다. 북한 당국자들이 입증해 보이기로는 그렇다. 이번 일 처리과정에서도 인도주의를 실천한 측은 그들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국민을 구해내는 일에는 우리도 당연히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풀어주기만 한다면 전직 대통령 몇 사람이라도 갈 일이다. 다만 그럴 경우에라도 국가적 대원칙, 민족적 대의를 굽혀서는 안 된다. 북한은 김 위원장만의 나라가 아니다. 수많은 우리의 겨레붙이가 대를 이어 살아갈 곳이다. 정권의 지위는 존중하되 그곳 겨레 및 그 후손들의 권익과 행복의 증진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대북정책을 수립·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신조가 '상생공영'의 큰 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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