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무궁화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보도(5일자 7면)한 이후 무궁화의 역사적 유래를 알고 싶다는 독자들의 문의가 6일 쇄도했다.



태극기나 애국가와 달리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규정한 법령 근거는 아직 없다. 다만 여러 문헌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상징적인 꽃으로서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무궁화의 역사적 연원은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상고사를 재조명하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근수(槿樹)'로,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환화(桓花)'나'천지화(天指花)'로 표현돼 있다.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는 구절이 나온다.

897년 신라 효공왕 때 최치원이 작성해 당나라 광종에게 보낸 국서에서는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지칭했다. 고려시대에는 '무궁화(無窮花)' 명칭이 처음으로 나온다. 구한말에는 국학운동에 의해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부각돼 한반도를 가리키는 '근역(槿域)'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1893년에는 남궁억이 윤치호와 의논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했으며 그로부터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한 대한독립선언서 상단에 태극기와 무궁화가 도안되는 등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지사들에 의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고양됐다.

한편 본보는 무궁화에 대한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비영리사단법인 '무궁나라'와 함께 오는 15∼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09 무궁화대축제'를 개최한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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